4. 텅 빈 기억의 페이지

by 바래

빛바랜 단체 사진과 명부를 나란히 펼쳐놓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분명 내 손을 거쳐 간 아이들인데, 사진 속 얼굴과 명부 위의 이름이 도무지 짝을 찾지 못하고 겉돈다. 아이마다 새겨져 있어야 할 소소한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해가 바뀔 때마다 아이들의 관찰 기록을 미련 없이 처분해버렸던 과거의 내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스물한 살, 너무도 어린 햇병아리 교사였던 나는 그 시절 그 많은 아이와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듯 보내기만 했던 걸까. 아이들이 예쁘기는 했을 텐데, 사랑으로 바라봐주긴 했을 텐데, 정작 소중히 남겨두어야 할 기억의 갈피가 마치 실종된 것만 같다.

다만,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처럼 남은 감정 하나는 선명합니다. 바로 '미안함'이 있다.


하루 서너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서른여덟 명이나 되는 일곱살 아이들을 돌보느라, 단 한 번의 눈맞춤도 나누지 못한 채 집으로 돌려보낸 아이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사고를 치거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온 신경을 빼앗기느라, 정작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던 아이의 마음속 외로움은 읽어주지 못했다. "선생님, 저 좀 봐주세요"라고 소리 없이 외쳤을 그 순한 눈망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릿하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의 철없던 초임 교사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지금의 '엄마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다시 바라봐주고 싶다. 사랑이라는 마음의 실탄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렸던 서툰 선생님을 용서해달라고, 이제야 마음을 다해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고 싶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 참회와 후회만이 남았지만, 이제는 기도로 대신하려 한다. 어느덧 마흔 중반의 어른이 되어 있을 나의 서른여덟 명 첫 제자들이, 어디선가 각자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구어가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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