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는 너무 가까웠다

에필로그

by 정고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시작되는 마음


한동안 나는

삶이 한 곳에서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눈을 뜨고, 하루를 버티고, 다시 잠드는 일상이

내게는 이어지는 길이 아니라

그저 반복되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나는 내 마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흔들림을 견디는 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를 몸으로 배웠다.


돌아보면,

나를 지켜준 것은 거창한 희망이나 확신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선택들,

조용히 나를 향해 내민 마음,

무너지지 않으려고 스스로 붙잡은 하루하루였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나는 그 속에서

조금씩, 아주 천천히 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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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처를 감당하는 힘이 생겼고

그 힘은 나를 과거와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내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깨달음은 소리 없이

내 안에서 오래 울렸다.


이제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은 나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만든 과정이었다.


어떤 관계는 떠나갔고,

어떤 마음은 무너졌지만

나는 끝내 나를 잃지 않았다.


아니,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오는 길을

혼자서 걸어온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삶은 큰 결심보다

조용히 나를 지키는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들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나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 긴 여정의 기록이다.


아직 다 완성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미 충분히 소중한 이야기다.


나는 이제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향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삶의 장면들을 담은 새로운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펜을 들게 되리라는 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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