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나를 바라보다

6. 나는 결국 나를 다시 선택했다

by 정고은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데 익숙해 있었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먼저 살피고,

그에 맞춰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관계의 기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늘 ‘나’였다.


무너졌던 시기를 지나며

나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누구의 마음보다

내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상대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불안했던 날들,

문 하나도 제대로 닫지 못할 만큼

겁이 나던 순간들,

밖에 나가는 일조차

어려웠던 시기,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괜찮은 척해야 했던 시간들.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견디는 법보다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조용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다시 선택해야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


KakaoTalk_20251230_184554690_05.jpg 사진 | 오동일(with permisson)


나를 다시 선택한다는 건

과거를 잊어버리거나

상처를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상처를 안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그 나를 기반으로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천천히 가져가는 일이었다.


그 선택을 한 이후,

세상은 갑자기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누구의 온기에도

서둘러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마음을 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나를 먼저 선택해야

다른 어떤 관계도

제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나를 잃은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나를 지킨 마음만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을.


나는 결국

나를 다시 선택했다.


그 선택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갈

가장 단단한 출발점이었다.

이전 14화# 3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나를 바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