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갱 Dec 14. 2020

봄의 오키나와, 안녕?

오키나와와의 첫인사

 오키나와에 봄이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봄을 찾아 오키나와에 왔다. 


 3월 초. 아침까지만 해도 코트를 입고 공항에 도착했지만, 두 시간 반을 날아 오키나와에 발을 디디니 봄햇살이 나를 맞이했다. 모든 것이 느릿한 오키나와지만, 계절은 더 빨리 돌아온다. 햇살은 포근하지만, 아직 그늘에 있으면 쌀쌀했던 그 봄날. 그래도 봄을 찾아 여기까지 왔으니 직접 몸으로 계절을 만끽해야겠다 싶어 테라스가 있는 곳을 찾아 카페 도카도카 (土花土花)에 찾아갔다. 경치가 좋아 유명하기도 한 이 카페에 가는 길에도 에피소드가 있다.


 이 가게는 차로 58번 국도를 달리다 폭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다. 오키나와 도착 3일 차, 아직 오른쪽 핸들이 버겁던 차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골목에서 마주 오는 차를 만나버렸다. 나는 일단 최대한 좌측으로 붙어 길을 내어주었다. 찻길 바로 옆은 도랑이었기 때문에 조마조마하게 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상대 차가 조심스럽게 잘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아차 하는 순간 그만 한쪽 앞바퀴가 도랑에 빠져버렸다.


 차에서 내린 상대는 미국인으로, 지난 3년간 오키나와에서 근무하다 귀국을 3일 앞둔 미군이었다. 도랑에 빠진 자신의 차를 보며 "귀국 3일 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고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분도 일본어가 미숙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처할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대신 그분 역시 카페 도카도카에 다녀오는 길이라, 가게로 돌아가 도움을 청했고, 안에 있던 일본 사람 서너 명이 도와주러 나왔다. 보아하니 굳이 설명도, 통역도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모두 도랑에 빠진 차에 달라붙어 차를 인도로 밀어 올리려 시도했다. “이치-니-산!” 하며 힘을 주어봤지만 커다란 차는 당연히 꿈쩍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 다섯이 차 귀퉁이를 들어 올리긴 역시 무리였을 것 같은데, 그때는 우리를 도와주러 온 분들이 견인 전문가라도 되는 마냥 든든해 보여서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이 좁은 길에 도랑이 있는데, 설마 빠진 차가 처음이겠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직접 차를 드는 것은 포기하고 사람들이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동안 나는 한 발 물러서서 둘러보았다. 맑은 하늘 아래에 곤경에 처한(?) 외국인이 둘.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나온 마을 사람들이 차를 두고 씨름하는 모습이라니. 어렸을 적 좋아하던 잔잔한 일본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이라,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ost가 흘러나왔다. 결국은 견인차를 부르기로 결론이 났고 내 차는 뒷걸음질로 빠져나와 길을 빙 둘러 카페에 도착했다.


 고대하던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코-히-(커피의 일본식 발음)를 시켜 한 모금 머금었다. 조금 전 있었던 해프닝을 떠올리며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있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왠지 그 사실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여기 사람들 오키나와 날씨만큼 따뜻한가 보네”

남은 날들에 대한 설렘과 함께, 타국에서 먼저 맞이한 봄 햇살은 너무나 포근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보니 오키나와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