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여행 중 그 나라의 축제를 마주치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며 유명한 축제에 맞춰서 휴가 일정을 내기는 쉽지 않아, 우연히 마주치는 작은 축제들에만 감사해야 했다. 그래서 오키나와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크고 작은 행사 소식이 있으면 달력에 고이 저장해두곤 했다.
4월에 열린 '류큐 바다 불꽃축제'는 오키나와에서 만난 불꽃놀이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일본 전역에서 여름에 걸쳐 지역별로 불꽃축제가 열리는데, 여름이 가장 빨리 오는 오키나와라서 그런지 일본에서 가장 빠른 여름 불꽃축제라 한다.
"불꽃놀이인데 입장료랑 좌석이 정해져 있다고? 다른 데서도 볼 수 있는 거 아냐?"
유명한 불꽃축제라서 그런지 입장권을 파는데 심지어 따로 사야 하는 좌석 값은 만만치 않았다. 창공에 쏘아 올린 불꽃을 보는 데 입장권이 필요하다는 것이 좀 생소했다. 우리의 선택은 티켓을 구매하는 대신, 행사가 열리는 기노완 해변공원을 지도로 열심히 분석한 뒤 공짜로 편하게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가는 길에 오키나와에서 정말 드문 교통체증이 생기기도 했다. 무작정 기노완으로 향하긴 했는데 마침 들른 상점 옆 둑길 쪽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향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작은 돗자리를 들고 무리에 합류하여 둑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바닷가 공원에서 올라오는 불꽃들은 다행히 둑 위에서도 또렷하게 잘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바다 위에서 하는 불꽃놀이는 처음 관람하는 것이었는데, 잔잔한 파도가 이는 바다 위로 불꽃이 투영되어 번지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불꽃이 흩날리고 나서 따라오는 '쿵'하는 파열음이 심장을 더 두근거리게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서운 곳에 가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오르는데, 공포로 인한 그 반응을 옆에 있는 파트너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혼동하여 파트너에 대한 애정이 높아질 확률이 올라간다고 한다[1]. 불꽃놀이, 특히 그 커다란 소리와 울림이 주는 심장의 떨림도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1] 흔들 다리 이론 Suspension bridge effect/ Misattribution of arousal이라고 한다.
이 불꽃놀이를 즐기는 가장 로맨틱한 방법은 보트를 빌려 바다 위에서 불꽃을 보는 것이다. 보트들이 투어상품으로 불꽃놀이를 보는 밤배를 예약받아 나간다고 한다. 이 사실을 늦게야 안 우리는 미처 신청하지 못했지만 듣던 대로 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이 정말 많았다. 바다에서 보는 탁 트인 불꽃놀이는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만, 떠 있는 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서는 배의 불빛도 또 다른 불꽃같아 아름다웠다.
불꽃놀이에 대한 일본인의 사랑은 또 각별한지라, 많지는 않지만 본토의 풍습대로 유카타를 입고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젊다기보다 어린 축에 속하는 커플들이었는데 왠지 보는 내가 다 풋풋해졌다. 우리도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여의도 불꽃축제를 갔었지. 지하철 역에서 과자를 사던 기억, 끝나고 풀밭에 누워 여운을 즐기며 사람들 떠나기를 기다리던 기억. 그런 기억들은 사실 불꽃의 이미지보다 더 오래 간직되기에, 불꽃놀이의 기억에 있어서 불꽃이 아무리 화려한 들 그 자체는 오히려 주인공이 아니게 된다. 같이 쪼그리고 앉아 손 잡고 불꽃놀이를 보니 파릇파릇한 그때의 감정이 꽃처럼 피어난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때도 지금도."
내뱉지 않은 말 대신 손을 꼭 잡고 축제가 끝난 뒤의 이른 여름밤까지 즐기던 하루였다.
1시간 동안 만 여 발의 불꽃을 쏘아 올리는 큰 규모의 축제. 음악에 싱크로를 맞춘 불꽃을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매년 4월 개최되는 것이 보통이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2020년은 규모를 축소하여 12월에 개최하였고, 2021년에는 취소되었다. 첨부한 지도에서 축제가 열린 기노완 해안공원 옆 주황색 화살표 친 부분에서 관람하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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