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말고 유학 이야기
“오키나와에서 공부를 했다고요?”
오키나와의 뜨거운 햇살, 그 아래 출렁거리는 푸른 바다. 그리고 로봇과 인공지능?? 나도 처음에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름도 생소했던 오이스트 (OIST) [1]. 알아보니 생긴 지 10년도 채 안된 곳이고, 아직 박사과정 졸업생도 없었다.
'오키나와에서 새로 연구실을 셋업 하는 일까지 많을 텐데..'
휴양지로 떠나는 기쁨보다는 새로운 장소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섰다.
[1] OIST의 정식 명칭은 Okinaw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Graduate University (沖縄科学技術大学院大学,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이다. 줄여서 대학원대학 (Daigakuin Daigaku)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 그대로 학사과정은 없고 박사과정만 있는 학교 및 연구기관이다.
>> 홈페이지: https://www.oist.jp
먼 외딴섬 오키나와로 전 세계 연구원들을 모으기 위함이었을까? OIST의 빵빵한 곳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강의와 세미나, 여름학교와 같은 다양한 경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자들을 OIST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 번은 학교 복도에서 어떤 아저씨와 (아주 소소한 주제를 가지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2001년 노벨상 수상자였다 (세상에나). 또 한 번은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칼 프리스턴이 우리 연구실에 방문했다. 신경과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고도 불리는 프리스톤은 '골초'였고, 흡연장을 찾던 프리스톤을 친히 모시고 나와서, 화물차가 오가는 캠퍼스 구석 흡연장에서 몇 년 만에 (소셜) 스모킹을 하며 세계적인 학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담배 배워두길 잘했다).
이런 과학계의 슈퍼스타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부를 하러 온 다양한 사람들 [2]도 OIST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연구실은 한국, 일본, 중국, 이란, 인도, 독일, 프랑스, 사우디 등 두 손으로 세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로 북적였다.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내 룸메이트들은 생물학을 전공하는 영국인과 태국인이었고, 그들을 통해 만난 또 다른 OIST 사람들은 내가 이때까지 만난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OIST에서는 이렇게 바닷속 산호만큼 다채로운 색을 가진 사람들이 잘 어우러졌다.
한국에서는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곤 했는데, 여기 OIST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인다 (자조적 농담을 포기 못하겠다면, "머슴을 살아도 부잣집 머슴이 낫다" 정도가 되려나?). 빵빵한 곳간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OIST가 앞으로 어떤 교육/연구기관으로 성장하게 될지 기대된다.
[2] OIST사람들을 오이스터(oister)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들 굴 (oyster)처럼(?) 매력적인 사람들이었다.
Okinaw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Graduate University (OIST, 沖縄科学技術大学院大学)
>> 주소: (중부) 1919-1 Tancha, Onna, Kunigami Distri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