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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Oct 23. 2021

어쩌다 보니 오키나와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키나와에서의 1년간의 신혼생활, 시작.

“오키나와로 공부하러 가려고.”




폭탄 고백


이태원 어느 루프탑 카페에서 주말 데이트 중이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남산 타워를 바라보다가, 다짜고짜 경희에게 말했다.

식: “오키나와로 공부하러 가려고.” 
갱: “오키나와?”
식: “응. 오키나와. 지도교수님이 오키나와로 이직한대.”


이미 서울–대전 장거리 연애 중이었는데, 서울–오키나와라니. 오키나와로 간다는 폭탄 고백을 하기 전, 이미 수백 번이나 그녀의 반응을 상상했었다. ‘너무 멀지 않아?’, ‘꼭 가야 되는 거야?’ 등등. 무려 1,000km도 넘는 장거리 연애가 힘들 것 같으면, 내가 어떻게든 대전에 남아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할 준비를 한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무 좋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얼떨떨한 상태에서 그녀의 대답을 재차 확인한 후, 우린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먼 걸 어떡하지?’ 그 고민 끝에 우리는 서울-오키나와 장거리 연애를 하는 대신, 초근거리 연애 (종종 결혼이라고도 불리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쩌다 보니 우리는 오키나와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주근접 아닌 해(海)주근접


이렇게 오키나와에서 신혼을 보내게 된 계기는 내가 오이스트 (OIST, Okinaw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란 곳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이스트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따로 하겠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먼저 오키나와로 건너왔던 나는 박사과정 마무리 준비를 하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숙사에서 학교 친구들과 살던 나에게 가장 급했던 것은 신혼집을 찾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집을 구할 땐 주위에 대형마트가 있는지, 지하철역이랑 가까운지, 그리고 직장이랑 가까이 있는지 따져보았지만 여기 오키나와에서는 달랐다.

식: “오키나와 어디서 살까?”
갱: “창을 열면 바다가 보이면 좋겠어.”


직주근접이 아니라 해(海)주근접이라 해야 할까? 학교와 가까운 곳보다는 바다와 가까운 곳을 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옵션들 중에서 학교와는 거리가 좀 있지만 바다와는 가까운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집으로 결정했다.



바다가 보이는 우리 집 테라스 풍경. 3층밖에 안되지만 근방에선 제일 높은 건물이라 온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구한 2 LDK 집 [1]은 한 달에 렌트비가 6만 엔 정도였다. 나 역시 월세라면 돈을 떼이는 느낌에 질색을 하는 한국사람이지만, 학교에서 4만 엔까지 주거비 지원을 해주었기에 큰 부담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집 계약과정은 전반적으로 순조로웠다. 예상했던 부동산 수수료뿐 아니라, 청소비, 보증금, 주차장 이용료 등 예상치 못했던 지출이 꽤 있었지만, 학교에서 도와준 덕분에 일본어 한 마디를 못하는 상황에서도 무사히 계약을 마쳤다. 설치를 하는데 2주나 걸린다는 인터넷까지 신청을 마친 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품만을 들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으로 들어왔다. 세탁기, 냉장고, 침대 등 옵션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정말 텅 빈 집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텅 빈 집에서 내가 가장 필요했던 것. 그녀가 왔다.


[1] LDK로 흔히 표현되는 집에서 L은 Living Room, D는 Dining Room, K는 Kitchen이다. 즉, 2 LDK는 방 2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집이다.




오키나와에서 집을 구할 때 체크리스트

오키나와 시골 신혼생활을 풍요롭게 채워줬던 것들.


토야항 수산시장

바다, 바다, 서해바다! 오키나와에 살고 싶은 이유의 알파이자 오메가. 특히 서해안과 가까우면, 날마다 멋진 저녁노을이 기본 옵션으로 딸려온다. 어촌 마을이라면 조그마한 항구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 항구 근처엔 갓 잡은 생선들을 파는 작은 수산시장이나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어서 좋다. 단, 바다 바로 앞집은 비추. 오키나와의 태풍을 몇 번 겪어보니, 바다 바로 앞에서 그 강한 태풍을 맞는다고 상상하니 오싹하다.


마트와 편의점. 오키나와에서는 걸어서 10분밖에 안 되는 거리라도 차를 타고 다닌다 (나도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뜨거운 오키나와 햇살 아래 걷다 보니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마트와 편의점이 있으면 매우 편리하다. 마트 중에서도 특히 San-A나 Aeon 마트가 물건도 다양하고 좋았다.


코인란도리. 거의 대부분이 건조기다

코인세탁소. 장마기간에 빨래 말리기가 너무 어려운 오키나와에서는 집 근처 코인란도리(세탁소, laundry)가 필수다. 집에 건조기가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코인란도리에 있는 대용량의 건조기는 단연코 삶의 질을 높여준다. 가격은 10분에 100엔 정도.


빵집우리나라 파리바게뜨처럼 베이커리 체인점 (Jimmy's)도 있지만, 동네마다 로컬 빵집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 빵이 맛있었는데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1,000엔 (약 만원) 정도면 빵 대여섯 개를 손에 쥐고, 잔돈도 거슬러 받을 수 있다.



세라노모리 공원

공원.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혹은 코인 란도리에 빨래를 돌리고 시간이 빌 때, 간단하게 산책하거나 앉아서 쉴 공간을 내어주는 작은 공원은 언제나 좋다. 


한잔 즐기기 좋은 식당. 택시비도 비싸고 대리운전 (다이코)도 꽤 비싼 편이라 집에서 먼 곳에서 외식을 할 때면 둘이서 같이 한잔 즐기기 어려웠다. 운전할 걱정 없이, 집 근처에 간단하게 한잔할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좋다. 


피해야 할 - (수수)밭. 집 근처 밭은 서정적인 시골의 정취를 더해주지만, 그와 더불어 수없이 많은 벌레도 같이 가져다준다! 연구실 친구 집은 수수밭 바로 옆에 위치해있었는데, 친구 집에 가보니 테라스는 통째로 벌레들에게 내어 주고 있었다 (and they don't pay rent!). 수많은 벌레와 동거할 계획이 아니라면 밭 옆의 집은 피하는 게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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