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하리 경주에 참가하다.
오키나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정말 남편 하나 믿고 보따리 싸서 온 ‘이방인’이었다. 영어나 일본어가 유창하지도 않았고 낯을 가리는 내 성격 때문에, 먼저 다가와준 좋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오키나와 생활은 외로움으로 일찍이 막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OIST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친구는 나딘이었다. 독일에서 온 나딘은 식의 연구실의 동료로,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친구였다. 오키나와에 도착하고 첫 주말에 있었던 바비큐 파티에서 나딘은 처음 만난 나에게 먼저 달려와 인사해줬다.
“안녕? 정말 반가워! 식과 결혼한 사람이면 좋은 사람일 줄 알았어. 너를 너무 만나고 싶었어!”
처음 보는 친구에게 이렇게까지나 환대를 받다니.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진심이 담긴 웃음에 이미 내 마음은 몽땅 그녀에게 빠져버렸다. 요즘 말로 핵인싸인 나딘을 통해서 OIST 구석구석 돌아다녔고,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나딘과 있으면 그 발랄함이 나에게도 번지는 것만 같아 그녀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여느 날처럼 학교 휴게실에서 만난 나딘은 나에게 반갑게 인사한 뒤 말했다.
"오키나와에서 매년 열리는 하리 대회(ハーリー)가 있는데, OIST 팀도 참가하거든. 너도 같이 하지 않을래? Family member도 참가할 수 있는지 내가 확인해볼게!"
그때까지만 해도 '하리'라는 것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그게 무슨 대회인지 물어봤다. 길다랗게 생긴 오키나와 전통 배에 12명 정도 탄 뒤, 조정경기처럼 신호에 맞춰 노를 젓는 경주였다.
"아니,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거 잘 못 해~"라고 일단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한 시간 가량 자전거를 타고 산 위에 위치한 학교까지 통학하는 운동 마니아였고 나는 병원에서 자란 허약한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이제껏 배운 영어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찾아보았지만, '친구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상냥하게 거절하는 법' 같은 카테고리는 없었다. 나딘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이 친구를 절대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거 재밌겠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머릿속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나딘은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하고 기뻐하며 내가 참가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었다. 그리고, 아아, 그렇게 나는 하리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으니 다국적의 팀원들 사이에서 혼자 구멍(?)이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긴장하며 도착한 연습 첫날. 내 예상과 다르게 분위기는 운동보다는 친목도모에 가까웠다. 진지하게 전략을 짜는 친구들의 주도하에 연습이 진행되긴 했지만, 모두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현지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인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를 영입(?)했던 것부터가 정예 멤버를 꾸리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운동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보다는 내가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가 더 중요했던 거였겠지. 추가로 나중에 대회에서 깨달은 것을 미리 말하자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한들 날 때부터 뱃사람(오키나와 말로 우민츄라고 한다)이었던 현지 사람들을 절대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느긋한 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하늘도 바다도 보였다. 방파제 안쪽에 위치한 연습장소는 바다가 아닌 호수와 같이 잔잔했다. 맨 뒤에 앉은 리더의 구령에 맞춰 모두들 큰 소리로 '이치-, 니!'를 외치며 박자를 맞춰 노를 젓는다. 노를 제법 수면 아래까지 넣지 않으면 추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세에 신경 써야 한다. 노가 잘 맞아 힘껏 물을 밀 때, 배가 물 위를 스르륵 미끄러져나가는 느낌이 노를 타고 내 몸으로 전해져 왔다. 그 묘한 느낌이 들 때면 내가 정말 뱃사람이라도 된 양 싶어 더 힘주어 노를 젓곤 했다. 휴식시간에 배 위에서 보는 노을은 육지에서와는 또 달랐다. 파도도 없는 잔잔한 바다와 예상치 못하게 뱃사람이 된 나라니.
하리 대회는 6월에 열렸고 대회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색색깔의 깃발을 단 배들이 줄지어 나와있었고, 마찬가지로 유니폼을 맞춰 입은 팀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았다. OIST에서는 세 팀이 출전했고 나는 여성 팀으로 출전했다. 우리 팀 12명은 대략 봐도 10개국의 선수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각 나라 대표 선수로 꾸려진 팀으로 보이진 않았으려나.
"땅!"
시작 소리와 함께 '잇치-니!' 하며 모두 노를 저었다. 처음엔 물살을 가르며 제법 배가 주욱 나갔지만 경쟁 팀의 배 역시 빠르게 나아갔다. 근소한 차이로 우리를 앞서던 옆 팀을 마음 같아서는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드라마 같은 역전은 없이 우리 팀은 꼴찌로 귀환했다. 하지만, 우리는 꼴찌여도 기죽지 않고 제일 크게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고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하리 대회는 나에게 일종의 도전이었다. 어느샌가부터 내가 소질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멀리하곤 했다. 잘하는 일을 더 잘하면서 주변의 칭찬을 받는 게 더 쉽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여기가 아니었다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배를 타서 노를 젓는 일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겠지. 마음에서 우러나서 한 도전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완주해내고 나니 뿌듯했다. 아니 무엇보다 너무 즐거웠다. 세상에는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것 중에도 재미는 일이 넘친다는 것을, 그러니 yes라는 대답을 쉽게 꺼낼 수 있게 마음 한편에 지녀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아직도 OIST 홈페이지에 하리 경기를 소개하는 페이지의 대표 사진 속에는 나와 식만이 알아볼 수 있는 크기의 내가 있다. 나중에 누군가 이 사진을 본다면 '학생도, 직원도 아닌 이 사람은 누구지?' 하며 궁금해하지 않을까? 열심히 활동한 전설적인 family member로 기록되길 바란다.
이 날 찍힌 내 사진은, 정말 뱃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사진이다. 1등을 거머쥔 듯 호쾌한 미소를 가진 뱃사람.
하리(ハーリー)
매년 5월 하순~6월 경 오키나와 현 각지의 항구에서 열리는 행사로, 오키나와 전통 소형어선으로 경주를 한다. 항해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축제로 여러 가지 기원설이 있지만 약 600년 전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하, 난조시, 요미탄, 온나 등 오키나와 각지에서 개최되며 그중에서도 나하 하리 축제는 대표적인 관광행사로 매년 20만 명 이상이 찾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출처 : Visit Okinawa Japan (www.visitokinawa.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