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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Dec 25. 2020

투 블라꾸, 리틀 캇또.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머리 자르기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마침내 머리를 잘라야 하는 날이 왔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한국어로도 설명을 잘 못하는 나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오키나와에서 머리를 하는 것은 처음에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1].


'나는 일본어도 못하는데 괜찮을까?'

두근거리며 동네 미용실을 찾아 나섰다.

 

슈퍼마켓 앞에 있던 미용실과 이발소. Credits: Google Maps


집 근처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슈퍼마켓 앞에 있던 미용실과 이발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성인 헤어컷 900엔”이라는 광고가 붙어있는 이발소를 지나치라고 말했다 [2].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미용실로 먼저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미용실 아주머니가 남자는 옆에 이발소로 가라고 했고, 그렇게 1년 동안 내 머리를 책임져주던 이발소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1] 원하는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소심한 나에게 더 어려운 일이다.

[2] 어디서 본 글인데, 이러한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은 무수히 많은 (헤어컷 실패) 경험, 빅데이터에서 얻은 통찰이라고 한다.



파란클럽 같은 아우라를 뿜는 이발소로 문을 들어갔다. 입구에서 라면가게에서나 봤을 자판기가 날 먼저 맞이했다.


'이런 데서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건가?'

일본어로 어지럽게 쓰인 자판기를 멍하니 보고 있으니, 어깨까 오는 긴 노란색 머리가 인상적인 헤어 디자이너 형님께서 친절히 티켓 발급을 도와주었다. 1000엔짜리를 지폐를 넣으니 100엔 거스름돈과 '커트'라고 쓰인 쪽지가 나왔다. 쪽지를 디자이너분께 건네드리고 자판기 옆 소파에 앉았다.


이발소 안에선 이미 몇몇 사람들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래도 장사가 좀 되는 곳인가 보네'라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그런데 거기엔 (편협한 내 견해로) 헤어 스타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듯한 사람들만 보였다. 서로 다른 이유로 자를 머리가 얼마 없어 보이는 까까머리 중학생 또래 남자아이와 흰 백발의 할아버지. 소파에 앉아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앞서 간(?) 이발소 동지들의 상태를 흘끗거리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어렸을 적 동네 목욕탕 이발소에서 이후로 한동안 본 적 없던 이발소 의자앉아서 내 머릴 맡겼다.


(왼쪽) Before. 설레는 맘으로 이발소에 앉아서. (오른쪽) After. 부인을 울린 머리스타일

일본어를 잘 못하는 나와 영어를 잘 못하는 헤어 디자이너 형님. 그리고 900엔 저가를 메인 셀링포인트로 광고하는 이발소의 아우라 [4]. 과연 그 예상만큼이나 우리의 첫 번째 만남은 좋지 않았다.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일본어 중 하나인 '조또'. 이 말을 뱉은 게 실수였을까? 조금 잘라 달라는 내 말을 짧게 해 달라는 걸로 오해한 것일까? 그 큰 차이를 “조또”라는 공통된 단어로 설명한 결과, 처참한 상황을 초래했다. 머리를 자르고 온 나를 본 경희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 내가 자기 관리를 포기한 것 같아서 슬펐더라나.


[4] 다른 미용실의 커트 평균 가격은 2-3,000엔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매번 같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이상할 때도 많았고 괜찮을 때도 많았다 [5].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니, '그래도 내 스타일을 알 던 곳인데'라는 생각이 들며, 그 이발소가 다시 생각났다.


“투 블라꾸, 리틀 캇또" [6]

나를 알아보시고 매번 이렇게 먼저 물어보던 그 머리 긴 디자이너 형님. 이제 찾아오지 않는 나를 기억할까? 맘이 변해서 안 찾아온다고 속상해하지는 않을까?


문득 그리워진다.

       

[5] 보통 삭발에 가까운 머릴 하고 다니던 친구 G에게 추천해줬는데 만족해했다.

[6] “투 블럭 스타일로 조금만 잘라주세요”라는 뜻을 가진 나와 디자이너 형님과의 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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