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가 3) 오래 머무르고 받아들이는 연습
스스로 둥글둥글한 성격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예민합니다'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계기는 작년 어느 일요일. 여느 주말처럼, 남편과 나는 금요일 밤부터 부지런히 대강의 짐과 나이 든 강아지를 챙겨 수도권 밖의 어딘가로 향했다. 어디서 무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보통 그랬듯 나가서 맛있는 걸 먹고, 강아지와 함께 걷고, 어쩌다 들어간 카페에서 책을 읽었을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 없었던 주말의 끝자락, 고양이들이 기다리던 집에 돌아와 간단히 짐을 풀고, 집을 간략히 정리하고 씻은 뒤에 오랜만에 침대 위에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내내 운전한 옆사람은 수면등을 끄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고 털짐승들도 모두 제자리를 잡았다. 평화로운 침대에서 내 눈에만 귀여운 그 잠든 얼굴을 잠깐 구경하며 맘속에서 '행복하다'는 감탄이 새어 나오려는 찰나, 정말 오랜만에 공황이 찾아왔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첫 공황은 아홉 살의 어느 날이었다. 작은방 침대 위에서 혼자 천장을 보며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가 '우리 엄마, 아빠, 가족, 이 세상이 모두 책을 덮으면 끝나버리는 책 속의 이야기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닿은 뒤 극심한 공포를 느겼다.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는 채로 가만 누워 등에 땀이 흐르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도 모르는 이 '무서운 생각'은 그다음부터 종종 불시에 찾아왔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공상할 시간이 적어진 덕분에 그 빈도는 줄었지만, 그것이 언제고 찾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있던 나는 그 생각을 마주하는 대신, 청소년기 특유의 불만족과 섞어서 내가 이런 경험을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어린 내가 '불행해서' 그랬을 거라고. 대충 만든 이야기였지만 통념상 대단히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았기 떄문에, 오랫동안 그걸 스스로 믿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그 모든 시간 뒤에 찾아온 공황. 가슴이 꽉 막히고 온몸이 쿵쿵 뛰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몸이 진정되고서, 잠시 천장을 보고 누워 숨을 가다듬었다. 평범했던 그날 밤 나에 대한 오래된 판단이 뒤바뀌었다. 내가 불행해서 공황이 왔던 게 아니었다는 것. 나는 그냥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 놀랍게도 평생 처음 든 생각이었다. 입에 올리기만 해도 순식간에 끝없이 무서워질 것 같아서 맘속에 꽁꽁 숨겨 두고 최대한 외면하며, 맞든 틀리든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썼던 그 공포감을 그제야 용기 내어 마주한 것이다. 그때서야 오랫동안 그 공포를 그저 피해왔던 나를 인정할 수 있었다.
없던 용기가 갑자기 샘솟은 건 아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나도 모르게 용기 내는 연습을 했다. 아사나에 머무름으로써 말이다. 특히 한 자세에서 오래 머무르는, 요즈음 흔히 '하타 요가'라고 불리는 수련을 처음 할 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유연성과 힘이 모두 필요한 자세를 비교적 오랫동안 그저 숨 쉬며 유지하는 수련은 쉽게 다칠 것 같기도 하고, 달갑지 않았다. 오죽하면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한숨을 하도 깊게 쉬어서 당시 나의 선생님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매번 일이 피곤해서 그렇다고 답했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온종일 어딘가 몰두하며 잊으려 애썼던 깊은 두려움을 사람들 앞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그게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꾸준한 수련은 '용기 내기'의 허들을 점점 낮추었다. 이런저런 자세에서 오기를 부리다 숨이 헉 차오르기도 하고, 흔들리고 구르고 쿵 떨어지고 숱하게 실패하면서 나는 오랜 불안에 대처하는 법, 미지의 세계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법, 장난처럼 가볍게 용기 내는 법을 배웠다. 머리서기에서 5분, 엎드려서 상체만 일으킨 부장가사나에서 20분 넘게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편안해졌다. 그 용기들 위에, 지금까지 착실히 몸과 마음을 일구었으니 이번에도 다치지 않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런 믿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일요일 밤, 행복과 동시에 거대한 불안이 떠올랐을 때 여전히 '나는 뭐가 문제일까' '나 사실 불행한 거 아닐까'라는 막연한 의심 속으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매번의 수련은 축축한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제는 나를 휘감는 불안으로부터 숨으려 하지도, 애써 외면하며 목표한 바를 이루려 무조건 내달리지도 않는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예민하게 감각하며 조금씩 움직인다. 나는 예민한 만큼, 불안한 만큼 깊게 몰입할 수 있다. 그저 눈을 감고 숨과 몸짓을 이어가며 땀 흘린다. 거기서부터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2023년 3월 『들』매거진 3호에 수록된 글을 일부 고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