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교사 이야기 1
세 가지 일
학교를 나온 저에게 세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이제 저에게 엄마, 아내 등...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어요. 학교에 있을 때는 거의 전부였는데 말입니다. 담임교사로서, 부장 교사로서, 업무 담당자로서 말이죠. 이런 역할이 사라지니 스트레스는 드라마틱하게 줄어들게 되었어요. 그 줄어든 스트레스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먹고사는 문제라는 생계형 스트레스이긴 하지만요. (누가 스트레스 보존의 법칙 좀 만들어 주세요!)
할 수 있는 일은 생계형 명퇴 교사였기에 제가 현실적으로 집중하는 커리어를 말합니다. 당장 월급이 나오지 않은 현실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감사했어요. 저는 이 일을 "필살기"라고 부릅니다. 이 필살기 덕분에 빠르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수월하게 새 직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하고 싶은 일은 20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제가 포기한 길이라고 보면 됩니다. 겸직 불허라서 못했던 일들,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못한 일이지만 제가 이 일을 했을 때 가장 만족하고 행복한 그 일이요. 하지만 그 일은 심적 만족감은 주지만 당장 밥을 주지는 않죠.
학교 밖을 나오면서 저는 이 세 가지 일의 비율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고정되어 있어 안정적이라 제 고민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균형감을 찾는 거였어요. 현재 저는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비율이 7 : 3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닌가? 조금 더 써서 6 : 4?
올해는 실험이다!
"그래서 선생님, 지금 무슨 일 하세요?"
누군가 물을 때 대답합니다.
"이것저것 다 해 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저를 실험하는 한 해라고 보고 있어요."
매월 소소한 실험을 합니다. 실패를 하는 날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줌으로 무료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 밖을 나오니 이상하게 작년에 반응이 좋았다는 강연도 슬그머니 사라지더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강연을 만들어보자며 실험을 감행했죠. (저 같은 소심한 사람에게는 굉장한 실험이었어요)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신청자가 매우 적었어요. 홍보 채널도 없었고, 이름도 없었고, 마케팅 능력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곧 이 실험 덕분에 저는 실제 줌 강연이 들어왔을 때 떨지 않고 편안하게 강연을 할 수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잘한 실험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무엇이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요.
지금도 저는 이름도, 팔로워도, 마케팅 능력도 없습니다. (바른 인성과 준법정신은 있습니다. 횡단보도로만 꼭 건너갑니다.) 거기에다가 최근의 실험으로 이제는 사업 수완까지도 없다는 것까지 알았답니다. 제가 유일하게 알게 된 건 세상에 이렇게 없는 게 많은데도 제 일에서 (프리랜서)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 실험의 목적은 하고 싶은 일이 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되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7 :3의 비율에서 5:5의 비율로 그리고 역전의 짜릿함까지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제 돼?"
누군가 묻는다면 (실제로 이렇게 묻는 인간이 제 옆에 있습니다. 옆지기라고... 친한 사람이 가장 무섭습니다. )
저는 올해까지는 계속 실험하면서 실패하면서 살 거라고 말할 겁니다. 올해까지는 이렇게 무모하게! 배짱 있게! 살고 싶습니다.
떼를 좀 쓰자면, 그동안 고생한 저를 거울 보듯이 바라보게 되었거든요. 학교 밖을 나와 보니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봄꽃이 피고 지는 걸 알게 되는 삶, 점심때 젓가락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삶, 주말을 기다리지 않은 삶, 대신 수사반장 본방은 기다리는 삶 등등.
그러니, 현실 타격감이 있더라도 생계형 명퇴 교사인 저는 그동안 외면했던 기회를 찾아 이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