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꿈샘 Jun 19. 2024

침묵이 오히려 낫다

다시 새벽에 글을 씁니다 5

어제 박세리 언니의 기자 회견을 보았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는데 영상을 시청하는 내내 화가 났다. 


-(이 사태가 오기까지) 막을 수 없었습니까?


-앞으로 아버지랑 의절하실 건가요?


-지금까지 갚아 드린 금액은 얼마입니까?


한 사람의 고통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질문이라니!


아무리 대중의 관심사를 대변하는 기자라고 할지라도 대중의 관심사가 누군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내가 세리 언니의 사건이 더욱 마음에 갔던 건 비슷한 일을 겪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한 후, 가끔은 누군가가 입을 대는 것보다 차라리 침묵 속에서 그 사람의 일이 잘 마무리되길 빌어주는 게 낫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면서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비밀을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해야 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과 두려움과 또 털어내고 싶어 했는지를 헤아린다면 조금 무거운 입이 필요하다.


"노든은 아내와 딸에 대해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해 노든은 차마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p. 24) - 긴긴밤, 루리 글 중에서 -


내가 좋아하는 동화 <긴긴밤> 중에 나오는 글이다. 코뿔소 노든이 가족을 이루고 맞이한 행복한 찰나의 순간을 저렇게 표현했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미치도록 소중한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걸 표현하는 도구인 말은 얼마나 미미한가에 대해 느낀다. 


말은 가볍다. 그래서 정말 소중하고 정말 행복했을 땐 말로 표현하지 않게 되는... 그 행복이 말처럼 가볍게 달아날까 봐....


침묵 속에서 우리는 그 찰나를 더욱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 큰 아픔 속에 있다면 이러쿵저러쿵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차라리 침묵하자. 대신 눈으로 지켜보자. 


내가 당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