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에 가면~
고도로 잘 끓인 버섯은 고기와 다름이 없다.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준 밥이라 했던가. 김치볶음밥에 이어 친구가 해준 밥 2탄이다. 집을 떠나 직접 요리를 해먹어야만 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바로 MT(Membership Training)이다. 누군가 MT는 마(M)시고 토(T)하고의 약자라고 정의하는 것처럼 밥을 만들고 먹으면서 친목을 다지는 활동이다. 새내기들의 흑역사 생성 장소 1위로 모두 MT의 기억을 잊으려 하지만 나에게는 장금이의 손맛으로 요리를 해준 동기들 덕분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과의 경우 밥을 4학년 선배들이 해주었다. 이게 전통이라고 후배들에게는 레크레이션 준비에만 집중하라는 배려라고 했다. 우리 조도 4학년 언니가 까르보 붉달에 떡과 비엔나 소세지를 넣어 라볶이를 만들어 주었다. 이어 새우깡, 홈런볼, 포카칩으로 과자 뷔페를 만들고 소맥까지 말아주면... 크으, 파티나잇 시작이다. 출석부로 통성명 하고 아이엠그라운드, 세상에서 제일가는 포테이토칩, 알코올로 암기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로 겨우겨우 연결하는 시장에 가면~까지. 게임에서 줄줄이 나오는 단어처럼 시장을 털은 기세로 장 봐온 먹거리들을 다 먹고 나니 어느새 이틀이 지나 있었다.
2박 3일의 마지막 식사인 아침은 조리과를 나온 동기들인 Rain과 달이가 장식했다. 시체가 된 동기들 사이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Rain과 달이는 부지런하게도 조리도구를 깔아놓고 있었다. 조리과는 개인칼 가방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오늘을 위해 칼을 갈아왔다는 말에 앞으로 Rain과 달이에게는 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랍과 냉장고를 사이좋게 한명씩 맡아 열은 Rain과 달이는 남은 재료를 슥 스캔하더니 김치찌개와 달걀말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첫째날 바비큐로 고기를 다 사용했기 때문에 '뭘로 김치찌개를 끓인다는거지?'라는 의문이 들때쯤 냉장고 담당 달이가 바스락거리며 버섯 봉지를 꺼냈다. 눈깜짝할 새에 동이 난 고기와 달리 인기가 덜했던 버섯 뭉치. 달이는 통통한 새송이 버섯을 삼겹살 모양으로 잘라 다진 마을에 볶아 고기로 둔갑시켰다. 여기에 콸콸콸 생수를 까 넣고 김치 넣고 양파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대파를 송송 썰어 넣어주면 끝이다.
서랍 담당 Rain은 계란을 꺼내어 달걀말이를 부쳤다. 알뜰하게 남은 버섯과 양파를 다지고 당근까지 작게작게 검법을 선보인 다음 스테인리스 볼에 넣고 섞어준다. 기름을 둘러 달군 후라이팬에 넉넉히 부어 한굴레 두굴레 옆구리가 터지기 직전까지 눈치를 보고 말아주면 베고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두툼한 달걀말이가 자태를 뽐낸다. 화룡점정으로 증정용 케찹 귀퉁이를 작게 뜯어내 지그재그로 뿌려주면 초대왕 달걀말이 완성이다. 두 명이서 구역을 맡아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완성해 내는 모습은 종만 안칠 뿐 [냉장고를 부탁해!]를 떠올리게 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김치찌개에 버섯을 넣는 것을 처음 보았다. 두부, 버섯, 쑥갓 등 갖은 재료가 들어가는 김치 전골이면 몰라도 김치찌개에 고기 대신 버섯을 넣는다는 발상은 해 본 적이 없다. 속는 셈 치고 버섯과 김치를 한 입 떠먹은 순간 요리왕 비룡의 美味가 스쳐지나가며 밤샘에 마카롱마냥 부어버린 눈이 번쩍 뜨였다. 돼지고기의 야들한 식감을 대신하듯 버섯은 스폰지같은 균사체의 특징으로 국물을 가득 품어 간이 적당했다. 환기를 위해 약간 열어둔 창문에서 들어오는 꽃샘추위의 쌀쌀한 바람과 살짝 걸친 체크셔츠, 여기에 따끈하고 칼칼한 김치국물은 극락이다. 수건놀이 대형으로 둘러 앉아 있어 냄비째로 들고 김치찌개를 들이 마시는 것을 상상으로만 그쳐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풍채에 맞게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계란말이는 너무 커서 여러입에 나누어 먹어야 했다. 후라이팬에서 내려놓아 잔열로 익어가는 계란말이는 촉촉했고 알알히 씹히는 채소비즈는 달걀의 부들함에 식감을 더했다. 평소 달걀초밥의 계란말이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Rain의 계란말이를 먹고 생각이 뒤바뀌었다. 입안 가득 들어오는 달걀이 만든 나이테의 풍족함은 먹어봐야만 알 수 있다. 김치찌개로 해장하고 여전히 쓰린 속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다정한 맛이다.
Rain의 달걀말이를 먹고 급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았는데 야채가 들어간 달걀말이는 한국식이라고 한다. 채소를 다져 넣어 알록달록한 외형이 특징이다. 맛술과 설탕을 넣어 달달한 것은 일식 달걀말이, 달걀을 크레이프처럼 얇게 부쳐 부추와 고기를 가득 넣고 말아낸 것은 중국식 달걀말이다. 양심이란 것이 바위에 던진 달걀처럼 깨진 나는 기회가 된다면 Rain에게 나머지 2개국의 달걀말이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농담이다. 하지만 그만큼 Rain은 계란말이 장인이다. 당장이라도 영수증 뒷면에 싸인을 휘갈겨 임명식을 내리고 싶었다.
MT에 와서 친구 중 가장 큰 축복은 조리과를 나온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한 요리도 이들이 만들면 겁나 맛있다. 이런, 설명하다 보니 흥분해서 사투리가 나와버렸다. 손이 빠르기도 할 뿐더러 한끗차이의 맛있음이 남다르다. 친한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손맛이 달라 각자의 개성이 담긴 맛있음을 찾는 재미가 있다.
오늘의 교훈: 조리과 친구를 사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