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창틀 냉장고
이럴 수가, 21세기에 냉장고가 없다니!
2024년 겨울 학교에서 주관하는 문화연수로 언니 3명과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 4국을 차례대로 거쳐 2주간 떠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정이었다. 유럽의 모든 문화는 새로웠지만 특히 토종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숙소가 놀라웠다. 수천개의 선택지로 예약에서도 애를 먹이던 망할 숙소...! 이탈리아의 숙소는 '47 steps'라는 건물의 이름에 걸맞게 47개의 높은 계단을 30kg에 육박하는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없이 오직 두 다리로 올라가야 했다. 무한의 계단 속 게임 캐릭터들에게 신기록을 위해 계단을 올라가도록 한 행위가 미안해졌다. 그나마 기숙사 형식의 프랑스 숙소와 호텔인 스페인의 경우 사정이 나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는 스위스다. 일단 우리의 여행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그 이유를 밝히도록 하겠다.
학과와 관련된 탐방을 하는 것이 목적인 연수였기 때문에 우리는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사진과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식품 관련 학과 연합팀이었기 때문에 스위스에서는 초콜릿 공장, 치즈 공장 견학을 필수로 넣었다. 그다음 식품과 관련된 장소는 바로 현지 마트이다. 사실 마트만큼 현지인들의 식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트를 방문했기에 평소 같으면 트레이 별로 필요한 사진만 찍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의 물가는 우리의 남은 여비로 포용하기에는 너무도 높았다. 흔히 말하는 저세상 물가였다. 제약과 시계 그리고 금융으로 부자가 된 나라라고 하더니 식당 가격으로 그 위세를 뽐내고 있었다. 마트에서 음식을 사가는 것이 그나마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스위스에는 당연하게도 김밥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왕 온 김에 식사도 스위스 식으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빵과 버터, 햄 그리고 함께 마실 우유를 골라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몸을 추스르고 빨리 자야 했으므로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손만 씻고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플라스틱 칼도 없어서 대충 기다란 빵을 손으로 가르고 버터는 포장지를 잡아 빵 안쪽에 듬성듬성 발랐다. 그리고 햄을 끼워 우물거렸다. 기념품도 우유통 키링인 유제품의 나라답게 버터만 발랐는데도 얼추 맛이 나는 것이 신기했다. 개별보다는 통으로 된 음식들이 저렴해서 그런 제품들만 골랐는데 문제는 보관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면서 씻으러 들어갔다 나오니 맏언니가 어느새 정리를 끝내놓았고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떯졌다.
자, 이제 스위스의 숙소가 놀라웠던 이유를 설명하겠다. 예상했겠듯이 숙소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는데 맏언니가 말했다.
"창문에서 버터 좀 꺼내줘."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반문했다. "네?"
"창문에 버터 있잖아. 거기서 좀 꺼내달라고."
창문? 나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지만 일단 창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는 놀라서 얼어붙었다. 진짜로 햄과 버터가 창틀에 끼어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바로 사진부터 찍었다.
맏언니는 비둘기들이 혹시라도 쪼을까 걱정되어 뚜껑도 단단히 닫아두었다며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조류들의 공격을 받은 흔적은 전혀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했던가, 스위스의 겨울날씨를 냉장고로 이용한다는 맏언니의 기발한 발상만큼 귀엽고 천진한 걱정이었다. 흔히 스위스라고 하면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을 떠올리지만 막상 도시의 추위는 한국 혹한기의 김밥 날씨에는 따라올 바가 못되었다. 적당한 신선 냉장고 날씨였다. 식품공전 보관해야 할 온도를 철저히 지켜 맛을 제대로 지켜 주었다. 맏언니는 정글에 가서도 살아남을 사람이라는 확신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전날에는 피곤해서 잘 안 느껴졌던 샌드위치의 맛도 더 좋았다. 다행히 빵은 딱딱해지지 않아 여전히 보슬보슬 폭신함이 살아있었다. 바게트와 비슷한 모양이었지만 조금 더 부드러운 부쉬맨 브레드에 가까운 느낌의 빵이었다. 이번에는 도구를 사용해 버터를 잘랐다. 컵라면을 먹기 위해 가져온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쪼개 버터를 두툼하게 잘랐다. 버터를 누운 도미노처럼 올리고 그 위해 햄을 쌓았다. 햄은 하몽처럼 얇게 저며 반투명하고 가운데에는 하얀 지방이 오솔길처럼 나있었다. 한 입 베어문 샌드위치는 두꺼운 버터층 덕분인지 버터프레첼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한창 앙버터가 유행했는데 딱 그 식감이었다. 미끄러운 버터에는 이빨자국이 남고 우유 태생의 고소함이 내는 풍미가 장난이 아니었다. 햄은 질기다기보다는 고급 엠보싱 화장지를 뜯었을 때의 결이었다. 마지막에 딸려 나오는 조각이 입술에 걸쳐지는 형태였다. 버터의 반투명한 식감과 햄의 반투명함이 겹쳐지니 90도로 돌리면 새카매지는 편광필름처럼 불투명함의 꽉 채워진 맛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건축물, 미술관, 박물관에서 본 보물보다 이 순간이 제일 가슴에 남는다. 언니의 아이디어는 스위스 몽블랑 산맥에 걸린 만년설 만큼 순수하고 반짝였다.
오늘의 밥친구인 맏언니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는데, 맏언니는 내가 3년간 일했던 신문사의 전대 편집국장이다. 지금의 글을 쓰기까지 문단을 나누고 다듬는 방법을 터득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평소에는 눈물도 많고 귀여운 성격이지만 일할 때에는 냉철한 분석력이 있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언니도 전공을 살려 쓴 글이 있는데 흥미로운 글이라 한 번 소개하고 싶다. 언니의 허락을 받아 신문 펜소리 코너에서 발췌해 왔다.
제목: 단짠단짠이 미치는 영향
최근 마라탕과 탕후루가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른 시각에서는 젊은 세대의 건강 악화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이 현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사탕과 같이 입에서 직접적인 단맛을 내고 국물의 짠맛이 느껴져야 식품 속에 당과 나트륨이 많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는 영양 측면에서 봤을 때 잘못된 상식이다. 소금 같은 경우에는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결합해야 입에서 짠맛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나트륨 형태로만 채소와 과일에 분포되어 있으면 짠맛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과일에는 당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에 하루 권장섭취량을 지켜 섭취해야 한다. 이처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하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짠맛과 단맛을 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음식 속 단맛은 ‘세로토닌’ 호르몬의 수치를 높여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짠맛의 나트륨 이온은 체내 전해질 균형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국 필라델피아 모넬 화학감각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대인들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이유를 자극이라고 발표했다.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맛과 짠맛을 섭취하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자극적이고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즉 단맛과 짠맛은 서로 증폭제 역할을 하며 더 많은 미각적 자극을 원하게 된다.
특히 한국인 식품화를 고려했을 때 짠 음식엔 탄수화물이 함께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라면, 떡볶이, 과자 등이 있으며 특히나 국과 밥을 함께 먹는 식생활 문화는 자연스럽게 달고 짠 음식에 중독되게 만든다. 이러한 탄수화물은 단당류인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흡수된다. 이때 체내는 인슐린을 분비하여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저장한다. 하지만 과량의 포도당은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켜 당뇨병과 비만을 유발한다. 더 나아가 고혈압, 고지혈증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과 대사질환이 연속적으로 함께 나타난다.
이처럼 달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 먹게 되면 잠시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건강과는 멀어질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를 음식을 통해 섭취한다. 인간의 활동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음식’이 역으로 우리 몸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서 섭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 여담
꼭 가고 싶은 식당이 있다거나 우리처럼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마트에서 먹을 것을 살 계획이라면 빵보다는 차라리 제철 과일과 치즈를 사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상큼한 오렌지와 브라타치즈, 올리브의 조합과 집주인으로부터 받은 와인 한잔이 스페인의 타파스 레스토랑에 견줄 만큼 맛있었다. 그리고 후유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도 밀가루 식품을 줄이는 것이 좋다. 쌀밥몬스터로서 2주 내내 밀가루를 먹었더니 두드러기가 생겨서 한동안 팔에서 피가 날 정도로 긁어댔다. 친절한 집주인님과 달콤한 과일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