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친구 다섯 명(해장국, 닭갈비, 감자탕)

투즈데이 런치 클럽

by Gourmet

귀 좀 가까이 대 주세요, 저희는 투즈데이 런치 클럽입니다!



제목: 신입 엄청 귀여운 게 무려 오천 개의 모임을 만듦

신입이 완전 어린데 팀장님이 뭐 하다가 '모임 하나 만들어야 되는 거 아냐?' 뭐 땜시 이 말했더니 오천 개의 모임을 만드심

정수기 모임, 커피 타다가 만나는 커피모임, 월루모임, 옥상 모임, 편의점모임, 간식 모임, 모나미 모임 그냥 뒤에 모임 붙이는 게 재밌나 봐

뭐 하다 만나면 '쥠님... 지금은 비밀과자모임입니다.' 하면서 과자 몰래 줌


우연히 이 글을 보면서 딱딱하게만 보이던 회사라는 단어에도 귀여운 분이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떠올려보니 우리에게도 이런 깜찍한 모임이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름하야 '투즈데이 런치 클럽'. 이름은 거창하지만 단순히 공강으로 점심시간이 긴 화요일에 싱이, 나, 철이 이렇게 3명이 모여 점심을 함께 먹는 모임이다.

화요일이 되면 등교버스에서부터 헤드셋을 쓴 채 dassut의 <Lunch time>을 흥얼거린다. '난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서 재미도 없는 걸 배우고 있잖아~ 친구들은 또 잘 해나가는데 나는 왜 이리도 꼬이기만 하지~'. 어쩜 일어나기 싫은 월요일을 버텨내고 공부하기 싫은 화요일에 딱 맞는 가사인지. 귓가에 아른거리는 돌림노래로 점심시간만을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참는다.

화요일에는 오전 시 30분 이론 수업이 하나 3시 실험 수업이 하나라 점심시간이 무려 4시간이나 된다. 그래서 화요일이 되면 우리는 보글보글 정성스럽게 뼈를 고아야 하는 해장국, 지글지글 깻잎과 함께 볶아야 하는 닭갈비, 야금야금 조심스럽게 고기를 발라내야 하는 감자탕 등 먹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음식을 먹으러 나간다. 수업이 땡 끝나고 공과대학에서 식당까지 내려가는 시간 20분, 음식 기다리는 시간 20분, 식사 시간 40분, 사리 추가해서 먹는 시간 20분, 학교로 돌아가는 시간 20분. 22422의 법칙을 지키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투즈데이 런치 클럽은 작정을 하고 모인 것도 아니고 어쩌다 시간이 맞는 사람이 이렇게 3명이었다. 시작은 싱이와 나 둘이었다. 철이는 어느 날 점심을 먹는데 전화로 합류했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어어, 같이 먹을 사람 없다고? 여기로 와." 우리는 주저 없이 위치를 보냈다. 그렇게 철이는 투즈데이 런치 클럽의 세 번째 회원이 됐다.

투즈데이 런치 클럽의 루틴은 이렇다. 11시 수업이 끝나기 15분 전 단톡으로 그날 먹을 메뉴를 회의한다. 그날의 날씨, 컨디션에 따라 메뉴가 정해지면 싱이와 함께 식당으로 향한다. 20분은 타박타박 걸어가면 꽤 긴 거리다. 곧 있으면 몸에 곰팡이가 피거나 버섯이 자랄 것 같은 우리의 유일한 공복 운동 시간이다. 가는 동안 오늘 수업에는 왜 평소보다 늦었냐, 도서관에 들렀다 왔다, 늦잠을 잤다 등 서로의 안부를 브리핑한다.

드디어 식당에 도착하면 작은 칸에 짝대기 가로, 세로, 다시 가로로 쫙 그어 3인분을 주문한다. 그러는 동안 스테인리스 컵에 물도 따라 놓고 화장지 깔고 그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착착 정돈한 후 후배인 철이를 기다린다. 아직도 어떻게 된 영문으로 이렇게까지 친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철이는 암묵적으로 명예 우리 학번이 되었다. 철이의 수업은 늦게 끝내 주기로 유명한 교수님이기 때문에 미리 철이의 몫을 챙겨놓는 것만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조그만 배려다. 뛰어온 철이가 도착함과 동시에 때마침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숟가락을 든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면 따로 회의를 하지 않아도 메뉴는 정해져 있다. 바로 해장국이다. 술도 안 마셨을 텐데 무엇을 해장하느냐, 전날 새벽까지 미루고 미룬 공부라는 것을 하면 알코올 대신 잠에 취해버리고 만다. 부서진 고기 조각에 국물을 머금은 야들야들한 우거지를 감아 한 번 더 국물에 퐁당 담가 한 입 하면 얼음물 세수를 해도 깨지 않던 잠이 스르륵 달아난다. 먹으면 술이 들깨...라는 썰렁한 개그와 반대로 들깨가루를 가득 풀면 그 고소함과 진득함에 다시 노곤해져 버리곤 하지만. 시험으로 긴장되고 경직된 몸을 풀어내기에는 해장국이 그만이다.

재실험이 확정되어 내 실수이지만 열불이 나는 날에는 느끼한 치즈가 덮인 닭갈비가 제격이다. 프렌치 다이어트를 따라 한답시고 반투명하게 익은 양배추를 먼저 먹어주고, 단백질인 닭고기로 손을 뻗는다. 자글한 고춧가루에 뒹군 닭껍질이 붙어있는 닭갈비는 얇게 붙은 지방의 미끈함과 껍질의 오돌토돌한 쫄깃함, 퍽퍽한 결이 겹친 살코기가 완벽한 조화를 자랑한다. 먼저 기본맛을 즐겼다면 이제는 치즈의 차례다. 얼린 치즈를 골고루 뿌리면 그물을 형성하며 녹아내린다. 하필 내가 집은 닭갈비에 치즈가 없다면? 괜찮다. 치즈우물을 찾아 살짝 떼어 붙여주면 된다. 뗄 수 있으면 떼보라는 기세로 늘어나는 치즈의 높이를 재보는 것조차 닭갈비를 먹는 즐거움이다. 한국인의 디저트 볶음밥까지 1인분 섞어주면 후식 살 돈 아꼈다.

유독 머리에 들어온 지식이 많아 당이 떨어지는 날은 대망의 감자탕이다. 푹 익어 파근파근한 감자와 진주 같은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쌀밥, 똑같이 흰색에 씹을수록 단맛이 진해진다. 이거지 탄수화물 더블. 부루마블에서 주사위 더블이 나오는 것만큼 도파민이 도는 맛이다. 여기에 상큼하게 매운 겨자간장에 콕 찍어먹는 고기와 마시면 고음이 나올 것 같은 칼칼한 빨간 국물이 끝장난다. 이따금 씹히는 뼛조각 정도야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크아아, 이쯤 되면 우리가 대학생인지 과장님인지 헷갈린다.

혼자 구석에 앉아 차가운 샌드위치와 주스로 점심을 때울 때 5분이면 충분한 점심시간이 3명이 모이면 왜 이렇게도 후루룩 지나가 버리는지. 맨날 다니는 학교, 이틀에 똑같이 듣는 수업 다를 게 없는 일상인데 할 말이 참 많다. 마지막에 뜬금없이 질문을 한 친구가 있어서 안 그래도 늦게 끝나는 수업이 더 늦게 끝났다, 물음표 살인마 교수님한테 잘못 걸렸다 등 뜨거운 음식을 후후 불면서 서로의 감정을 토로한다. 그러면 아, 그 친구가 눈치 어디다 팔았냐, 그 교수님 어제도 한 명 골라 잡더라고요라며 위로를 해준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다 보면 평소에는 딱 맞던 1인분이 금세 불어난 건지 배가 불러와 한 숟가락의 밥은 꼭 남기게 된다.

날이 유독 쌀쌀하거나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에는 사리 시킬 돈으로 눈빛을 교환하며 소주 한 병을 대신 주문한다. 해장국, 닭갈비, 감자탕은 맵싹한 아이들로 사실 소주가 단짝인데 가장 맛있을 날을 기다려 인내심을 가지고 참은 거다. 그다음 수업은 안전 제일 실험 수업이기 때문에 취하는 것은 금물이다. 소주 한 병을 세 등분하면 딱 으슬으슬한 몸을 덥힐 수 있을 정도로만 열이 오른다. 인간 알코올램프랄까.

학교로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열심히 실험을 하면 어느덧 해가 지고 하교버스를 탈 시간이 된다. 투즈데이 런치 클럽이 열리는 날은 해시계가 고장 난 것 같다. 하지만 든든하게 먹고 열심히 보냈다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다음 주 화요일이 벌써 기다려진다.

원피스 루피가 말했지, "너 내 동료가 돼라!" 밥친구가 한 명이 더 생긴다고? 동료는 다다익선, 오히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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