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친구 네 명(핫도그)

핫도그 한 마리 몰고 가세요~

by Gourmet

'영화관 = 팝콘'이 공식이지만 류할매에게는 '영화관 = 핫도그'이다.


가난한 대학생인 류할매와 나는 달의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에 7,000원 영화를 보러 갔다. 그 영화는 바로 [릴로&스티치]. 그동안 애니메이션을 실사한 영화들은 실망스럽다는 평이 많았는데, [릴로&스티치]는 원작만큼의 감동이 있다는 이야기에 냉큼 달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매표소에 내리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풍부한 팝콘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달콤한 캐러멜 팝콘이 우리를 유혹했지만 오늘의 영화관 식사는 핫도그다. 저번에 영화를 보며 팝콘 한 통을 비운 나는 이에 끼인 옥수수 껍질로 이빨을 닦기 전까지 고통을 받은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하와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핫도그를 먹으면서 보면 기분이 더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표를 보면서 내가 핫도그를 누르자 류할매는 동료 찾았다는 표정으로 눈과 입이 동그래지며 '어, 너도?'를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핫도그를 주문했다. 여러 종류의 핫도그 중에서도 케첩과 머스터드만 뿌려진 기본 핫도그를 시켰다. 신메뉴인 튀긴 마늘이 올라간 먹물빵 핫도그는 도전정신으로 이미 먹어보았다. 류할매는 향신료 또는 특유의 향이 나는 소스가 들어간 음식을 싫어한다. 이를테면 쌀국수, 브리또 같은 음식은 안 먹기 때문에 늘 먹던 대로 기본 핫도그를 골랐다.

류할매는 영화관에 오면 팝콘보다는 핫도그를 먹는 게 좋다고 했다. 평소 먹는 거를 좋아하는 류할매는 아무래도 속이 반은 공기인 팝콘보다는 팔뚝같이 기다란 빵과 통통한 소시지가 주는 포만감이 행복한가 보다. 류할매는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류할매는 별명처럼 다른 유행은 하나도 모르면서 음식과 관련된 신조어만큼은 기가 막히게 습득해서 사용한다. 시험을 유달리 잘 본 날처럼 축하할 일이 있을 때에는 '축하포카칩~', 주전부리를 받아 고마울 때는 '감쟈합니다.'라고 한다. 심지어 코난 극장판을 보고 감격했을 때에는 '감동의 도가니탕'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류할매의 말투는 사투리가 절반, 이런 신조어가 절반인데 그런 말투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함께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류할매의 말투에 물들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언젠가에 내일은 반드시 먹고 싶은 게 있다며 한식, 중식, 일식 메뉴를 다 나열하지는 않나,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을 때면 자기는 더 먹을 수 있다고 밉지 않은 허세를 부린다. 특히 가장 애정하는 메뉴인 초밥에서는 이러한 허세가 더 두드러진다. 초밥이면 30 접시는 더 먹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말을 하고는 남기는 날이 더 많다. 그럴 때면 나는 장난으로 류할매를 타박하곤 한다. 아무래도 음식에 대한 사랑에 비해 위장이 못 따라가는 것 같다.

요즘 영화를 보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영화의 광고 시간이 더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다. 핫도그는 말 그대로 뜨거울 때 먹는 음식이라 영화가 시작까지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참에 다 먹어버리고 영화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나와 류할매는 핫도그를 해치웠다. 종이봉투에 담겨 아직 따끈하다 못해 뜨거운 빵은 갓 데워 촉촉해 씹을수록 연한 단맛을 냈다. 짭짤한 소시지는 탱글 하게 품어왔던 육즙을 팡 터트렸다. 빨갛고 노랗게 윤기 나는 소스들은 빵과 소시지의 단짠단짠함에 신맛을 더해 느끼함을 지웠다. 역시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

영화의 주인공 스티치는 또 다른 주인공 릴로가 강아지를 대신해 데려온 친구다. 단순히 미국 회사에서 만든 영화라 핫도그를 고른 것이었는데, 영화의 주인공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화끈한 성격을 가진 스티치는 'Hot dog'그 자체였다. 속으로 메뉴선택을 자화자찬하며 농심 너구리 라면의 CM송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를 'Hotdog 한 마리 몰고 가세요~'로 바꿔 부르며 즐겁게 영화를 관람했다.

이런 의식의 흐름대로 영화를 보다가 류할매가 영화를 잘 보고 있는지 궁금해 고개를 돌렸다. 돌리자마자 얼굴이 마주친 류할매는 아까 먹은 핫도그 소시지의 소금을 다 배출할 기세로 울고 있었다. 평소에도 류할매는 눈물이 많긴 한데 영화의 명대사 'Ohana means family, Family means nobody gets left behind. Or forgotten.(오하나는 가족이란 뜻이야, 가족은 아무도 뒤에 남겨지거나 잊히지 않는다는 뜻이고.)'가 슬펐나 보다. 'This is my family. I found it all on my own. It's little and broken.. But still good. Yeah, still good.(제 가족이에요. 제가 찾았어요.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여전히 좋아요. 네, 여전히 좋아요.)'라는 마지막 명대사가 나오자 방울방울 나오던 류할매의 눈물은 폭포로 바뀌었다.

가족의 중요성을 담은 감동적인 영화라 울지 않도록 든든한 핫도그로 배를 씩씩하게 채웠는데, 핫도그의 빵쪼가리가 류할매의 눈물을 흡수하는 스펀지로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류할매의 눈물은 덜 잠긴 수도꼭지처럼 2차로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먹은 걸 눈물로 다 소비할 줄 알았다면 팝콘도 시킬 걸 그랬다. 하필 그 달 유독 돈이 똑 떨어졌던 게 패착이었다. 내 통장잔고에는 딱 핫도그와 콜라를 시킬 돈만 남아 있어 차마 팝콘을 시켜서 나눠먹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국물을 품은 반투명 만두처럼 귀여운 얼굴이 되어 버려 '에에에, 울었대요~'하고 잔뜩 놀리긴 했지만, 다음에 류할매와 슬픈 영화를 또 보게 된다면 더 챙겨 먹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류할매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사실 나도 동생이랑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언니의 모습이 찡했거든. 핫도그를 먹지 않았다면 눈물을 잡아둘 힘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극장을 나서며 류할매가 말했다.

"다음엔 팝콘도 먹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에도 우리는 핫도그를 시킬 것 같다.

여담으로 우리가 본 영화가 7,000원이었는데, 류할매 앞에서 7,000원은 금기어다. 여름방학 동안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온 류할매는 대만 공항에서 있었던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웃픈 일화를 풀어냈다. 외국음식을 계속 먹으니 질려서 라면을 주문했는데 7,000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삶은 계란 한 개와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서비스가 합쳐져 7,000원. 공항은 참으로 무서운 곳이라는 걸 느꼈다. 앞서 말했듯이 류할매는 놀리면 타격감이 좋기 때문에 그 뒤로 동기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학과에서 컵라면을 먹으려고 하면 하이에나처럼 짓궂은 동기들이 류할매에게 다가가 '그거 7,000원이야?'라고 깐죽거리고, 류할매는 '아니라고~!'라고 화답하는 소리가 한동안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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