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친구 열 명(베이글)

커쥬 유어마이걸

by Gourmet

나비와 베이글을 먹을 확률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나비는 새초롬한 고양이 눈매와는 반대로 손짓 한번에 찢기는 나비의 날개처럼 연약했다. 나비가 제출한 결석계를 쌓으면 탑이 될 정도였다. 학교라는 장소는 친구를 매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당연하게 기대가 되는 장소이지만, 나비는 이 원칙이 예외였다. 학교에 가보고 나서야 나비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왔구나 했다. 나비가 건강한 날, '오늘은 나비를 만날 수 있겠지? '라는 것을 소원으로 빌어 이루어지는 날에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5학년의 나에게는 나비를 학교에서 만나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였다.

학교에서 나비와 보내는 시간은 10분의 쉬는 시간 다섯번,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였다. 그래서 나비와 늘 학교가 끝나면 걸어서 15분 거리인 카페베네에 갔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ost 'Cause you are my girl~'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그곳 말이다. 우드톤의 인테리어는 숲속에 들어온 듯 신비롭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넓다란 의자는 푹신한 방석이 깔려 있어 온 몸을 맡기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눈에는 이불더미가 동굴이 되고 박스가 우주선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카페베네가 비밀의 화원이었다.

한 달 용돈 3만원을 받았던 우리에게 허락된 메뉴는 2000원짜리 베이글이었다.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은 어니언 베이글과 블루베리 베이글. 베이글은 간이 약하기 때문에 '00맛'이라도 들어가 있지 않으면 까다로운 초등학생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간식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어렵다. 베이글이 크기에 딱 맞는 동그랗고 하얀 그릇에 담겨 나오면 셀프 코너에 비치되어 있는 물을 컵에 따라 웨이터처럼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 놓는다. 다시 손님모드로 돌아와 칼로 질긴 베이글을 한땀한땀 썰면 수다를 시작한다.

시급을 벌어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장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꼬맹이 2명이서 허구헌날 와서는 2000원짜리 메뉴 하나를 시키고 자리를 차지해 1시간을 떠들었음에도 미소로 친절하게 주문을 받아 주셨다. 자릿세에 부합하는 다른 메뉴를 시켰던 것은 딱 한 번. 여름메뉴로 팥빙수가 나오고 마침 나비가 일주일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만날 날 축하의 기념으로 먹었다. 소녀 두 명에게 소중한 추억의 장소를 마련해 준 사장님께 늦었지만 감사의 말을 전해본다.

힘주어 가장자리가 뭉개지긴 했지만 부채꼴 모양으로 자른 베이글을 물 한 모금과 함께 씹으면 질겼던 식감이 쫀득하게 변한다. 밥 먹을 때 물을 마시는 것은 소화에 좋지 않다고 부모님께 타박을 들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물은 음식의 풍미를 혀뿌리까지 끌어당겨 준다. 물과 함께 먹는 어니언 베이글은 목구멍에서 양파스프로 바뀌고 블루베리 베이글은 블루베리 스무디로 바뀌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블루베리 베이글의 경우 반건조 블루베리 알갱이가 박혀있어 씹을수록 진해지는 베리류의 새콤달달함을 느낄 수 있다.

떡볶이처럼 맵고 과자처럼 짭잘한 군것질 없이 삼삼한 베이글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었던 이유는 나비가 다정함을 알려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햇님이'라고 부르는 말씨에서는 잎새달의 벚꽃향이 났고, 우리만의 인사는 포옹이었다. 사람에게 닿는 것을 질색하던 나였는데 나비는 어느새 만나면 팔을 벌리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염치를 교육하는 애플데이에는 사과할 일이 없어도 편지를 써주는 친구였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나비는 이따금 나를 그려주곤 했다. 그 옆에는 학상 단호박을 덧붙여 그리곤 했는데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내 모습이 인상깊었다나. 나비는 두번째 전학으로 쓸쓸함을 품었던 나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알려 준 사람이었다.

17살 여름의 한창 때 세드엔딩으로 끝났던 하이킥처럼 나비도 어느날 사라졌다. 문자의 이름이 (알 수 없음)으로 바뀌고 단서도 없이 연락이 끊겼다. 원래도 짧으면 3일 길게는 일주일이 지나야 답을 하는 나비였기에 연락을 기다리다 몇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성인이 되어 나비와 동창인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해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스치듯이 본 적도 없다. 받은 만큼의 사랑을 배로 돌려주고 싶었는데 소리소문 없이 떠나 버렸다. '정말 이제 볼 수 없는 거구나'를 느낀 뒤에는 베이글을 잘 먹지 않게 됐다. 정확히는 주문을 꺼리게 되었다. 베이글은 그 애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니까.


나비를 만난 뒤로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는 습관이 생겼다. 앞으로는 항상 마지막에 서로 먹으라며 양보해 남겨두는 과자처럼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부디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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