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소쿠리 배달
나에게서 파전까지의 거리, 엘리베이터 11층.
<응답하라 1988>에 이런 장면이 있다. 서로의 집에 반찬을 배달하다 사거리에서 마주친 주인공들.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가 배경으로 깔린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한국인의 정이 잘 표현된 장면이다. 정환이가 말한다.
"이렇거면 다 같이 먹어, 그냥."
아파트가 생기며 이웃의 '정(情)'은 사라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2018년 어느 아파트 숲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X와 나는 이웃사촌이었다. 같은 아파트, 나는 9층, X는 꼭대기 20층. 엘리베이터를 통해 ㄹ자 경로를 따라 간식이 담긴 소쿠리를 배달했다.
'식구'는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 동의 아파트에서 서로 집 음식을 나눠 먹었던 X와 나에게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렸다. 당시에는 피로 엮인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났고 많은 음식을 나눴다.
보통 내가 배달한 건 엄마랑 함께 만든 사과파이였고, X가 가져온 건 파전이었다.
사과파이라니, 호주에서 외국물 먹은 티를 여기서도 냈다. 엄마의 레시피는 타르트지 대신 만두피를 이용한 간단 버전이었다. 먼저 사과를 손톱 사이즈로 다져 시나몬 가루와 설탕을 넣고 냄비에 볶는다. 잼보다는 수분기가 적은 형태. 사과의 펙틴 구조가 어느 정도 살아 있어 아삭함이라는 사과의 정체성을 지켰다. 만두피에 적당량을 봉긋하게 올리고 가장자리에 물을 살짝 묻혀 봉합한다. 물만으로는 접착력이 부족해 포크로 눌러 빗살무늬를 만들어 준다. 익힐 때 속이 터지는 걸 방지하는 비법이다. 이대로 찰랑한 높이의 기름에 튀기면 황금색 기포방울로 장식된 반달 사과파이가 완성된다. 갓 튀겨 데지 않도록 호호 불어 조심히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가루가 흩어진다.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사과 속이 터져 나온다. 가을 하늘의 노란 빛 에너지를 품고 있다. 글리터처럼 사과에 붙어 반짝이는 시나몬 가루는 사과파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가을 낙엽의 향을 그린다. 사과파이가 눅눅해지기 전에 키친타월을 소쿠리에 깔아 얼른 X의 집으로 배달한다.
일주일이나 이주쯤 지나면 소쿠리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따끈따끈한 파전이 담긴 채로.
X네 집 파전은 식당에서 '스끼다시'로 나오는 밑반찬 스타일이었다. 밀가루가 구워지며 나는 달짝지근함과 해물의 짭조름함. 본 음식이 나오기 전 몇 번이고 추가하게 되는 그런 맛. 이따금 점도가 남아 있을 때도 있지만 그것마저 X네 집 파전만의 매력이었다. 특히 X의 아버지께서 횟집을 운영하신 덕분인지 오징어며 바지락의 신선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파전은 튀김만큼은 아니지만 기름을 가득 품고 있는 음식이다. 온기와 함께 고소함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름진 음식은 인생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사과파이도 그렇고 전도 그렇고.
X와 함께한 파전 추억이 하나 더 있다.
X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 다른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이웃사촌이었던 기간은 중학교 때. 어찌저찌 7년간을 함께한 사이다. 그날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직전, 방과 후 마지막 날이었다.
매미 소리가 교실까지 울렸다. 한국의 오랜 풍습인 '책거리'를 되살려 같은 시간대 수업을 했던 선생님들이 기술가정 실습실을 빌리셨다. 각각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소규모였지만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이니 한 반 규모가 됐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파전 반죽은 이 파티를 기획한 국어 선생님이 준비하고, 전 굽기는 기술가정 시간에 요리왕처럼 두각을 나타냈던 친구들이 도맡았다. 평소에는 조용했던 친구가 한 손으로 원반 같은 전을 오차 없이 180도 회전시키는 진귀한 묘기에 박수를 칠 수 있는 공연도 준비되어 있었다.
집이었다면 귀찮아서 간장 따르기로 끝났을 종지는 맛을 아는 과학 선생님의 지휘 아래 간장, 마요네즈, 청양고추의 3박자로 꾸며졌다. 지글지글 음식 굽는 소리에 복작복작 사람 소리. 어쩌면 선생님들께서 우리들보다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학교의 부모님은 선생님이라 했던가. 다른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 같아서 여름임에도 명절 분위기가 물씬 났다. 모여앉아 먹는 음식은 뭘 먹어도 맛난 법이다. 누가 한국의 고등학교가 삭막하다는 소리를 했는가. 이것이 바로 야간자율학습의 낭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X와 멀어진 이유도 밥 때문이었다.
수능이 다가오며 서로 예민해진 탓이었을까. 7년을 알고 지낸 것이 무색하게 사소한 이유로 다투게 됐다. 문과인 X는 1반, 이과인 나는 8반이었다. 우리 둘 말고도 몇몇 밥을 같이 먹는 친구가 더 있었다. 주로 나와 같은 반인 친구 한 명이 1반으로 X와 친구들을 데리러 가곤 했다. 점심시간은 종이 땡 치는 순간부터 학생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경주가 시작된다. 우리 학교는 14반, 58반이 따로 묶여 있는 ㄷ자 구조였다. 나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사람으로 된 물길을 헤쳐 1반에 도착해야 했다.
서운함은 어느새 차곡차곡 모이다 둑처럼 터졌다.
어느새부터 X가 우리가 도착해서야 오늘은 밥을 거르겠다는 말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급식을 먹기를 제외하곤 인생의 낙이 없던 내게 이러한 행동은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말했다.
"그럼 우리 따로 밥 먹자."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멀어졌다.
이것은 나의 일방적인 의견이다. 분명 X도 나에게 서운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조금 더 성숙해진 지금이라면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근본적인 이유를 찾았을 테지만, 학생 때란 으레 이런 관계가 많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으로 멀어지는 그런 관계.
나에게는 친해지고 멀어지고가 파전과 급식으로 남은 X.
아직 연애를 해본 적은 없지만 미디어에서 숱하게 나오는 전남친 이야기에 공감이 되는 이유는 분명 X 너 때문이야. 너가 '미안해.' 한마디 했잖아? 이런 글 안 썼어.
그래, 서운함이 그리움으로 바뀐 지금은 '전남친 토스트' 대신 '전여친 파전'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먼 훗날 사과파이 레시피를 물어보러 연락이 올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