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Daddy
쿠킹마마 No, 쿠킹 대디 Ok~ 카스테라 Start!
나와 동생이 성인이 되니 아빠도 여유가 생기셨나보다. 옛날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구체적인 시간으로 따지면 40년 전쯤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아빠가 국민학교에 다녔을 무렵이다. 당시에는 일명 '다라이 카스테라'가 있었다고 한다.
졸업사진이 필요없을 것 같다고 했던 나에게 담임선생님께서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며 결정을 말리신 적이 있었다. 아빠도 그런걸까. 카스테라에 들어가는 머랭을 손으로 쳤던 기억, 할머니가 큰 대야를 머리에 이고 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우리가 어릴 때도 아빠가 종종 요리를 하곤했다. 주말에 친했던 가족들을 초대해 스파게티를 만들곤했는데, 4살짜리 친한 동생의 '아저씨가 만든 스파기티가 제일 맛있어요!'(아기라 스파게티의 발음이 안되 '스파기티'라고 말한다.)를 자랑삼곤했다. 당시의 아빠의 필살기는 스파게티와 짜파게티였다. 면 요리만큼은 엄마의 요리만큼 기가 막혔다.
그뒤로 한동안 바쁘셨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신 건가 했는데, 한참 유튜브에서 유행하던 밥통카스테라를 보시더니 만들어봐야겠다고 하셨다. 그 뒤로 아빠는 나에게 함께 만들 파티원들을 모아보라고 하셨다. 밀가루 체치는 사람, 머랭 만드는 사람, 굽고 자르는 사람 각자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카스테라는 함께 만들어야 진정한 맛이 난다나.
미심쩍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아빠가 즐거워보이기도 하고 정말인지 궁금해서 파티원을 긁어모았다. 아빠는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미리 재료들을 해동시키고 도구들을 세팅하셨다. 마치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CookingDaddy의 타이쿤, 아니아니 요리교실을 준비하는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옛날처럼 다라이 카스테라는 재현하지 못했지만 밥통카스테라도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캬라멜반응으로 겉면은 반질한 윤기가 났고 바삭했다. 아무래도 홈메이드의 한계로 조금 질기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생크림을 더해 새로운 매력으로 즐길 수 있었다. 자신감이 붙으셨는지 이 뒤로도 친구집에 놀러간다고 하면 아빠는 카스테를 만들어 줄까? 라고 물어보시곤 한다.
밥통으로 만드는 음식들은 특별함이 있다. 카스테라 말고도 아빠의 추억의 음식이 하나 더 있는데 밥통쫀드기다. 이것 역시 완벽한 재현은 안되었다고 하지만 옛 것을 다시 만들어 먹고 후손들과 새로운 추억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음식은 추억이 뿌려져야 제맛이 난다.
추억의 파편이 아쉬울 때는 새로운 추억을 찍어보는 건 어떨까? 예전과는 다른맛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분명 맛있다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