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오는 만화&영화
<식객>_허영만
"맛은 혀 끝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사 가기 전 아빠의 서재에는 식객 전권이 가지런히 꼳혀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그리스로마신화, 마법천자문을 읽을 때 나는 식객을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22권 106화 '병원의 만찬'. 맛없는 병원밥을 먹는 게 고역인 환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 모여 만찬을 갖는다.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며 음식을 준비하는데 내가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것은 두릅이다. 갓 나온 새순을 보며 등장인물들이 상상력으로 식사를 하는데 나도 같이 침이 꿀꺽 삼켜졌다. 봄의 초록을 응축한 싱싱한 두릅. 가장 맛있는 것은 책을 읽으며 상상으로 느끼는 맛일지도.
<밥 먹고 갈래요?>_오묘
"얕은 언덕길을 오르는 동안 시장 구경을 할 수 있는 그런 집이라 골랐었지."
시장호박식혜 화에 나오는 대사다. 곧 취직하면 자취할 집을 보러 가야 할 처지라 동질감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 방학동 도깨비 시장 근처에 살았던 추억도 있다. 아침마다 가던 시장 옆구리 통로 앞 떡집에만 있던 초코설기가 참 맛있었는데. 그런데 나에게 호박식혜는 시장과는 관련이 없다. 서울할머니 친구분 중에 호박식혜를 만들어서 보내주시는 일명 '호박식혜 할머니'가 계셨다. 초록동색이라고 우리 할머니도 요리를 잘했는데 호박식혜할머니의 호박식혜도 맛이 일품이었다. 할머니들처럼 세월을 견뎌낸 늙은 호박의 맛은 흉내 낼 수 없는 달큼함이었다.
<차차차>_한나
"어째서 차는 이렇게 많은 민족을 끌어들이고 문화를 섞이게 하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걸까요?"
차(car)가 아니고 차(tea)다. 수채화풍의 인물들이 꼭 찻물에서 태어난 것만 같다. 녹차, 홍차 등 차나무에서 나오는 차뿐만 아니라 유자차와 오미자차 같은 대용차까지 폭넓게 다룬다. 만화 마지막에는 작가님이 직접 찍은 차 사진들이 있었다. 지금의 보편화되었지만 덕후의 개념을 이 만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떠한 한 가지를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은 멋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비교적 인기도 순위가 낮은 편이었는데 하루는 중학교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발표를 하는 날이 있었다. 그때 어떤 친구가 이 웹툰을 인용해서 차에 대해 발표를 했다. 진짜 반가웠다. 이러한 연결고리로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됐다.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만 겹쳐도 금방 친구가 된다.
<야채호빵의 봄방학>_박수봉
"추웠던 겨울 편안한 버스 대신 따뜻한 추억을 선택했다. 그래! 그때 야채호빵을 먹었지...!"
입시로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던 야채와 왕따의 트라우마를 가진 나비,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호랑이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친애하는 나의 밥친구에게'를 작성하는데 영감을 준 만화다. 정말로 마음의 병은 좋은 사람과 맛있는 밥만 있다면 일정 부분 치유가 가능하다.
<리틀포레스트>_이가라시 다이스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일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은 그냥 시간만 보내면 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일은 무언가는 하고 있어야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해결되기도 한다."
음식만화의 묘미는 만화에 나오는 음식을 따라 만들어보는 것 아닐까? 나는 열네 번째 요리 밤조림을 따라 만들어보았다. 고3이 되어 여름 방학숙제 대신 자율학습으로 학교에 나가는 것이 야속해 하루를 통으로 사용해 요리해야 하는 음식으로 즐거운 방학이라는 기분이라도 내보기로했다. 만화를 보고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유튜브로 자세한 방법을 참고했다. 반나절 동안 불린 밤의 겉껍질을 칼로 깍아내면 손톱이 새까맣게 변한다. 사실 그 시간에 나의 손톱을 새까맣게 만든 것은 흑연이었어야하지만 뭐든 공부 대신 하면 재밌는 법. 하루쯤은 봐줘라. 와인을 한 스푼 넣고 끓이고 헹구고를 3번쯤 반복하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보늬밤조림이 완성된다. 예쁜 유리병에 담아 우리보다 더 고생하시는 담임선생님께 선물했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없음에도 입시 스트레스가 있었다. 지금 이렇게 행복할 줄 알았다면 그때에도 걱정을 많이 하지 말걸. 당시에 막연한 불안감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내 모든 걱정들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찰리와 초콜릿공장]_팀 버튼
"사는 것이 초콜릿보다 달콤하다는 것"
초콜릿 공장에서 잉과응보를 당하는 아이들을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한 팀버튼의 걸작이다. 이번에는 내 이야기보다는 후속편 [웡카]에 대한 평을 써 준 고마운 후배 오빠의 글로 대신한다. 편집국장을 맡은 첫달부터 투고자가 없어 펑크를 낼 뻔 했는데 흔쾌히 글을 써 준 은인이다.
제목: 인생은 한 조각의 다크초콜릿처럼
2005년에 개봉한 조니 뎁 주연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다들 어렸을 적 TV 혹은 VOD로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VOD로 봤던 필자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조연들이 초콜릿 강을 마시다가 파이프로 빨려 들어가거나, 일하는 다람쥐를 잘못 건드렸다가 소각로에 빠져 버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과응보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서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뇌리에 박혀있는 영화이다.
그런데 19년 만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후속작 '웡카'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간혹 방이나 본인 물건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어렸을 적 추억이 깃든 물건이나 사진을 보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의 향수에 젖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렇듯 '웡카'의 예고편이 나왔을 때, 가족들과 한데 모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았던 추억이 떠오르며 '웡카'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됐다.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초콜릿 공장 주인인 윌리 웡카의 어렸을 적 모습을 그린 프리퀄 영화이다. 웡카는 달콤 백화점에 자신의 이름을 단 초콜릿 가게를 내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도시에 도착하지만, 사기꾼에게 당해 세탁소에 감금되거나, 초콜릿 카르텔의 견제로 수입을 모두 압류당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웡카는 굴하지 않고 기발한 방법으로 사기꾼을 속여 세탁소에서 탈출하거나 지하 하수구를 이용해 도망을 다니며 초콜릿을 팔아 차가운 현실에 꺾이지 않고 꿈을 이뤄나간다. 영화 막바지에는 초콜릿 카르텔의 계략으로 힘들게 열었던 초콜릿 가게가 문을 닫고 추방당할 상황에 놓이는 등 위기가 극에 치닫지만, 세탁소에 함께 갇혀있었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초콜릿 카르텔을 체포하고 버려진 성을 매입해 초콜릿 공장을 세우며 헤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나게 된다.
영화의 주 테마가 초콜릿이니만큼, '웡카'의 웡카를 다크 초콜릿으로 비유하고 싶다. 설탕이 적게 들어가고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을 씹으면 쌉싸름하고 떫은 향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지만, 이런 쓴맛에 익숙해지면 자꾸 생각나서 다시 다크 초콜릿을 찾게 된다. 또한 다크 초콜릿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페틸에틸아민성분이 뇌에서 도파민을 방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여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게 해 준다. '웡카'의 웡카가 여러 사람에게 속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버텼던 씁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결국 꿈을 이뤄낸다는 점이 처음엔 쓴맛에 의아해하다가도 그 맛의 매력에 빠지는 다크 초콜릿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주변 인연이나 가족,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며 좋은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고 특히 열심히 달려왔지만 장애물에 걸려 잠시 길을 잃은 사람들, 사람이나 사랑에 치여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초콜릿 같은 기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