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친구, 흑요리사(삽겹살, 코스요리)

딤섬 표류기

by Gourmet

"사일씩이나 이 거지같은 섬에 버려지다니... (쩝쩝)"


2024년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가 한국을 강타했다. 내 주변에도 비공식 흑요리사가 있다. 맛집을 꿰고 있으니 별명은 'MAP' 정도로 해두겠다. 자원한 조리병 출신에 출장요리를 해주러 왔으니 흑요리사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 취미 역시 맛집 탐방이다. 가는 모든 곳의 음식 사진을 찍어 두는데, 음식 맛이 조금 변한 것 같으면 저번에 왔을 때 찍어둔 사진을 토대로 뭐가 바뀌었는지를 분석하는 기행을 보이는 인간이다.


제 1화 표류의 시작

<흑백요리사>가 방영한 같은 해, 우리는 지역 특산물인 한 꽃을 아이스크림으로 재탄생시켜 축제에서 판매하기 위해 섬에 들어간 적이 있다. 나는 이 여정을 '딤섬 표류기'라 명명했다. 싱이의 동생이 <동물의 숲>에서 섬 이름을 '딤섬'이라고 정한 것에서 따온 명칭이다. 3박 4일을 위한 짐 챙기랴, 일정 구상하랴 정신이 없던 우리는 정작 우리의 끼니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섬에 들어가기 전 우리가 가는 곳이 인구가 별로 없는 섬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주제에 6개입 라면 1박스, 냉동 볶음밥을 맛별로 3봉지, 2묶음 세트인 냉동 만두 정도만을 구입했다. 여자 2명에 남자 2명이니 머릿수로만 봐도 부족할 것이 뻔한데, 당시에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던 것 같다. 20대에 유치원생보다도 못한 산수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리를 통해 섬에 들어와 짐을 풀고, 아이스크림 믹스를 만들어 두고 뉴런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니 아차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창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MAP에게 S.O.S를 청했다.

"MAP님, 제발 와주세요."

원래 추가 인원으로 합류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긴 했지만 음식을 들고 하루 더 빨리 와달라고 했다. 다행히도 MAP은 흔쾌히 허락했고 우리는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비록 아이스크림 믹스를 냉장고에 옮기지 못한 죄로 18도의 방에서 굶어 죽기 전에 얼어 죽을 뻔했지만.


제 2화 구원의 출장요리사

다음 날, 쓰레기 같은 몸 상태를 감추기 위해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아이스크림을 판매했다. 손님들의 기뻐하는 모습과 눈앞의 반짝이는 윤슬을 위안 삼아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철수할 시간이 됐다. 비척비척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같이 축제에 참여했던 이모님들이 챙겨주신 부침개와 류할매의 부모님께서 사주신 치킨으로 우리의 양손은 무거웠다. 그리고 출장요리사인 MAP이 삼겹살을 구워주고 국을 끓여줬다. 도마와 후라이팬을 이용한 플레이팅까지 해줬는데, 현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삼겹살은 지글지글 구워져 고소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황금빛으로 익었다. 한 점 집어 입에 넣자 부드럽고 고소한 기름이 입안에 퍼졌다. 국은 뜨겁고 시원했다. 피곤한 몸에 따뜻한 국물이 스며들었다. 차리고 보니 다 기름진 음식들이라 금방 질릴 뻔했는데, MAP이 센스 있게 사 온 쌈무 덕분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아삭한 쌈무가 느끼함을 잡아줬다.

거지 같은 섬에 표류하긴 했지만 류할매의 부모님의 사랑과 동기 사랑을 모두 느낄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제 3화 집들이 파인다이닝

또 한 번은 집들이에서도 MAP은 제 실력을 뽐냈다. 싱이의 아랫집으로 이사를 가며 집들이를 했는데, 초대된 사람들한테 먹고 싶은 메뉴를 한 가지씩 물어보더니 파인다이닝 뺨치는 코스요리를 해줬다.

에피타이저: 라이스페이퍼 카나페

기름에 튀긴 라이스페이퍼에 구운 새우, 양파 절임을 올렸다. 라이스페이퍼는 바삭했고, 구운 새우는 탱글했다. 양파 절임의 새콤함이 입맛을 돋웠다.

메인 1: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

베이컨의 짭조름함이 아스파라거스의 아삭한 식감과 어울렸다. 베이컨 기름이 아스파라거스에 배어 고소했다.

메인 2: 크림리조또

크림리조또는 부드럽고 고소했다. 쌀알이 크림에 흠뻑 젖어 입안에서 녹았다. 파마산 치즈의 짭짤함이 크림의 고소함을 더했다.

메인 3: 로제파스타

로제 소스는 토마토의 새콤함과 크림의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뤘다. 면발은 쫄깃했고, 소스가 면에 잘 배어들었다.

메인 4: 깐풍기

바삭한 튀김옷에 새콤달콤한 소스가 코팅됐다. 고추의 알싸함이 느끼함을 잡아줬다.

디저트: 김치 필라프

디저트로는 김치볶음밥을 해줬다. 코스요리이니 김치 필라프로 바꿔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양식, 중식, 한식이 섞여 있으니 이름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새콤한 것, 고소한 것, 느끼한 것, 매콤한 것 순서대로 나오는 음식들의 향연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20대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미신적인 성격이 사라지면서도 서로의 기쁜 일을 순수하게 축하해줄 수 있는 한국인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집들이는 꽤나 좋은 전통인 것 같다. 집주인의 실력에 따라 얼마나 맛있는 음식으로 채워지느냐만 다를 뿐이다. 싱이의 집들이를 할 때에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이때도 즐거웠는데, 요리 기구들을 벌써 능숙하게 사용하는 MAP을 보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더욱 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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