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고 먹은 타코
"En la forma de agarrar el taco se conoce al tragón."(대식가는 타코를 잡는 방식으로 알 수 있다.)
멕시코 속담이다. 타코를 먹는 사람의 태도나 습관을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를 호주 타코 맛집으로 데려간 오빠는 대식가보다는 미식가에 가깝다.
나와 14살 터울인 오빠는 2010년 드라마 <파스타>가 유행하기 직전 한 발 앞서 알리오올리오를 만들어주고, 내가 성인이 된 지금은 맛있는 와인을 고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읽다 보면 친오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촌오빠다. 워낙 친하다 보니 사촌이라는 촌수를 생략하곤 해서 다른 사람들도 종종 "너 첫째 아니었어?"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아무튼 우리 가족이 호주에서 살던 무렵 오빠도 호주로 유학을 와 함께 살았다. 5년만 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우리 가족과 달리 오빠는 지금도 약사로 호주에서 살고 있다.
2023년 1월, 우리 가족은 호주의 향수를 다시 맡고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빠가 일을 오래 쉴 수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간 짧은 여행 동안 골드코스트, 바이런베이, 시드니 세 곳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반백의 아빠는 택시 드라이버의 기억을 살려 렌터카로 이 도시들을 횡단하려 했으나 나이를 생각하라는 엄마의 만류로 비행기를 타 시간을 절약했다.
아빠의 이런 용맹한 성격을 보면 결혼하자마자 연고도 없는 호주로 두 분이 무작정 떠나온 연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가족들이 호주, 네팔, 일본에 흩어져 타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디론가 떠나 사는 것을 좋아하는 건 가족력인 것 같다.
첫 번째 도시: 골드코스트
첫 번째 도시에서의 먹거리를 풀어보자면 이렇다.
점심으로 먹은 푸드코트의 미트파이. 소금이 이미 뿌려진 감자튀김에 소금을 더 주문한다는 Ozzy의 식생활답게 굉장히 짭조름했다.
저녁에는 예전에 친했던 이웃의 초대를 받아 직접 만들어 먹는 풀드포크 햄버거와 파블로바 케이크를 디저트로 먹었다. 파블로바에는 과일 대신 과일젤리가 들어가 있었는데, 서로 다른 디저트가 섞임으로써 더욱 향기롭고 새로운 맛이 나는 것이 신기했다.
다음 날 아침은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레밍턴 케이크. 플라스틱 통에 바코드가 찍혀 있었다. 한국에서는 건초더미를 마시멜로 형태로 비닐에 말아놓곤 하는데, 호주에서는 건초더미도 레밍턴 케이크 모양으로 네모반듯하게 잘라져 있어 대왕 케이크같이 느껴져 먹음직스러웠다.
두 번째 도시: 바이런베이
두 번째 도시에서는 아빠 친구를 만났다. 치킨집을 하셨다는 친구분은 우리에게 반반무많이를 사주셨다.
호주까지 와서 치킨이라니, 소중한 한 끼를 낭비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치킨은 언제나 옳다. 한식이라고 하면 보통 김치나 불고기를 많이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치킨도 이제는 한식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주의 건조한 날씨에 치킨의 갓 튀긴 껍질에서 나오는 기름이 무척 잘 어울렸다.
저녁에는 오빠를 만나 현지에서 유명한 젤라토 가게를 갔다. 호주 여행 중 유일하게 웨이팅을 했던 곳으로 한국에서는 잘 팔지 않는 젤라토 메뉴들이 즐비했다.
여기서 한 가지 소원을 이루었다. 바로 럼레이즌 건포도 젤라토를 만난 것이다.
<꿈빛파티시엘>에서 디저트 팝업스토어를 열어 더 매출을 많이 올린 순서대로 우승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팀은 이때 젤라토로 승부를 본다. 피스타치오 젤라토, 럼레이즌 건포도 젤라토, 소금 벚꽃 젤라토가 나온다.
시그니처 메뉴는 벚꽃젤라토를 루브르 박물관 모양으로 만들어 시럽과 견과류를 뿌리는 다빈치코드 젤라토이지만, 나는 럼레이즌 건포도 젤라토가 맛이 더 궁금했다.
피스타치오 젤라토는 브라보콘의 피스타치오맛으로 해결이 가능했고, 소금 벚꽃 젤라토는 꽃에는 특별한 맛이 없으니 소금 우유 아이스크림과 유사할 것 같았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럼주는 마셔본 적이 없으니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컸던 것이다.
이제 드디어 21살이 되어 럼레이즌 건포도 젤라토를 먹어볼 수 있다는 성취감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젤라토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나의 인내심을 보상해 주는 맛이었다.
고급스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럼레이즌 건포도가 콕콕 박혀 있었다. 럼은 특유의 향으로 바닐라의 느끼한 맛을 지우고 깔끔하면서도 화한 쌉쌀함으로 마무리됐다. 한 입 떠먹자 럼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건포도는 쫀득하게 씹혔다. 달콤하면서도 알싸했다.
빨간색 신호등이 반짝이는 호주의 야경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거리가 조화를 이루었다.
!타코의 발견!
다음 날에는 대망의 타코를 먹으러 갔다.
가게 이름은 Chihuahua Taqueria. 4.7의 구글 별점에서도 맛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다.
지금은 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그때는 타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바다 수영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오빠가 추천한 곳이니 맛있겠지." 정도의 감상이었다.
메뉴 역시 오빠가 추천하는 대로 시켰다. 타코에서는 Pescado와 Pollo, 사이드로는 Corn Cob를 시켰다.
가게에서 명시한 메뉴 설명에 따르면 Pescado는 맥주에 재운 생선 튀김, 숯불에 구운 옥수수, 치폴레 아이올리를 곁들인 구운 후추 살사 타코. Pollo는 구운 닭고기에 토마틸로 살사, 할라피뇨와 아보카도 코코넛 크림이 들어간 타코다.
두 개 중 오빠의 원픽은 Pescado라며 생선가시가 나올까 주저하던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오빠의 말은 정말이었다.
사악한 가격과 달리 아담한 사이즈의 타코쉘. 알차게 들어 있는 토실토실한 대구살 튀김은 레몬을 뿌려 산미가 돌면서도 담백했다. 잔가시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생선 튀김이 바삭하게 씹혔다. 레몬 즙이 입안에 퍼지며 상큼함을 더했다. 여기에 더해진 구운 옥수수 알갱이는 연한 단맛을 주고, 후추의 짜릿함은 미각을 일깨웠다. 자칫 뻑뻑하게 느껴질 수 있는 타코 반죽은 살사가 촉촉하게 만들어줘 음료수가 없어도 술술 넘어갔다.
그리고 킥은 역시 고수!
홍끼 작가의 <먹는 인생> 99화를 보면 도저히 입에 맞지 않던 식재료까지 맛있게 느껴지게 해 주는 음식으로 타코와 고수를 꼽는다. 평소에는 퐁퐁 맛으로 느꼈던 고수가 다른 재료랑 어우러지니 향기로워지며 타코의 느끼한 맛을 깔끔하게 잡아준다고 표현하며 느끼는 맛의 세계가 한 칸 더 넓어졌다고 했다.
나도 이 타코를 먹기 전까지는 고수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이후로는 타코에는 무조건무조건 고수다. 고수가 안 들어가면 미뢰가 보내는 "타코!"라는 신호에서 느낌표가 빠지는 맛이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최강록 셰프가 인터뷰에서 <미스터 초밥왕>으로 요리를 배웠다고 했는데, 음식은 만화로 배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날은 음식과 분위기, 이후의 액티비티까지 3박자가 완벽했다.
신선한 물고기의 여행이 느껴지는 생선 커틀릿 타코. 호주가 자랑하는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들어온 파라솔에서 그늘이 주는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는 야외 테이블. 익어버린 맨발을 식히는 해수욕까지.
미트파이와 파블로바, 레밍턴 케이크보다 더 강렬한 것이 멕시코 음식인 타코라니 아이러니했다.
세 번째 도시: 시드니
시드니에서는 대부분 숙박 시설의 조식을 이용해서 맛이 희미하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은 오지 나이트 마켓에서 먹은 스페인 빠에야와 맥주 정도...?
오빠가 추천해 준 타코 하나가 모든 기억을 집어삼켰다.
요리사를 곁에 두는 것도 축복이지만 미식가를 곁에 두는 것도 커다란 축복이다.
바이런베이에 놀러 갈 계획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Chihuahua Taqueria의 Pescado를 잊지 마라고 귀에 대고 소리치고 싶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이 없을 만큼 최고입니다요!!!
짭쪼롬... 아니 그냥 짰던 미트파이. 그래도 역시 버터에 볶은 고기라 맛있었다.
지나가다가 찍은 레밍턴 케이크 건초더미.
인건비가 저세상인 호주에서 가성비를 찾는다면 야시장을 추천합니다. 싸고 맛있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