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친구, 이모(고기, 냉면)

고기고기

by Gourmet

이모의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앞으로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앞으로." 우연히 들어간 고깃집에 쓰여 있는 문구였다. 정말 사장님이 재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저기압일 때 고기앞으로 가라니. 언어유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저격당했다.

가만 보자. 고깃집과 저기압.

이모가 떠올랐다. 저혈압으로 늘 피곤해하지만 고기, 특히 양념갈비 집에 갈 생각만 해도 힘이 난다는 우리 이모.

서울 방학동에 살 무렵 이모와 같이 지냈다. 지금은 더 그렇지만 그때도 서울의 집값은 만만치 않았다. 주말이 되면 집 근처 양념갈비 집에 함께 가곤 했다. 양념맛이 기가막힌 곳이었다. 고기가 익을 동안 커다란 온수기에서 나오는 따끈한 육수를 홀짝이며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육수는 뜨겁고 구수했다. 입안이 데일 듯 뜨거웠지만 추운 날에는 그게 좋았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갈비. 고기를 뒤집으면 양념이 철판에 눌러붙으며 달콤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간장 베이스에 배즙이 들어간 양념은 갈비에 윤기나게 발라져 있었다. 불에 익으면서 캐러멜처럼 달콤하게 졸아들었다.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갈비살이 부드럽게 씹혔다. 양념의 단맛이 입안에 퍼지다가 간장의 짠맛이 뒤따라왔다. 마늘의 알싸함이 느끼함을 잡아줬다. 뼈에 붙은 살까지 싹싹 발라 먹었다. 그리고 지글지글 익어가는 갈비에는 살얼음 낀 냉면이 빠지면 섭하다. 고기가 식기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으므로 냉면과 같이 먹으면 혀를 데일 염려가 없다. 차가운 육수가 입안을 식혀줬다. 면발은 쫄깃했고, 육수는 시원했다. 좌식 식당이었는데 추운 날 가면 엉덩이는 보일러가 데워주고 머리에는 띵한 냉면의 상반된 감각이 어린아이에게는 엄청난 자극이었다.

솔로의 장점은 많다. 일단 무엇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혼밥 문화가 아직 성행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양으로 보나 메뉴의 종류로 보나 어떻게든 모여서 밥을 먹어야 편할 수 있었다. 지인들과 외식을 할 수도 있지만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먹는 양도 줄여야 하고 메뉴 선정도 적당히 타협을 봐야 한다. 반면 가족들과 외식을 하면 비교적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이모와 같이 살며 함께 갈빗집을 가는 것이 나름의 추억이었는데, 아쉽게도 이모는 따로 자취를 하게 됐다. 여기에는 웃픈 사연이 있다. 당시 내 동생은 미운 4살이었다. 외할머니께서 쌀을 보내주시면 자기 집으로 온 쌀이니까 이모는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거나 (사실 엄마랑 이모가 외할머니의 둘밖에 없는 딸들이므로 쌀을 보내주신 것이다),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으려고 하면 우유를 안고 도망갔다. 어른들의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먹는 걸로 조그만 조카에게 박해(?)를 받는 것이 서러워서 독립했다고 이모는 농담삼아 회상하곤 한다.

여전히 혼자 사는 이모와 만나는 날이면 지금도 식당은 고깃집으로 정해져 있다.

"이모, 오늘 뭐 먹을래?"

"갈비 먹자."

이모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한다. 저혈압으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던 이모가 갈비 앞에서는 눈이 반짝인다. 고깃집은 보통 4인 자리로 고정되어 있어 다인원일 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솔로는 이럴 때만 슬프다.

"이모, 더 시킬까?"

"그래, 한 판만 더."

양념갈비 한 판이 더 나온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이모가 말한다.

"역시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앞으로야."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모를 위해 다른 혼밥처럼 1인 고깃집도 생기면 좋겠지만, 사실 이모와 함께 먹는 양념갈비가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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