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소식
나야, 소식좌.
에밀리 언니는 소식좌다. 그것도 진성 소식좌. 새 모이만큼 먹는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에밀리 언니는 이름이 주는 분위기에 걸맞게 유리세공품처럼 연약하고 가냘프다. 태풍이 불면 날아갈 것 같아서 바람 부는 날에는 팔짱을 꼭 끼고 걷는다. 작은 몸으로 커다란 기타를 품에 안고 몇 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기타가 언니를 안고 있는 건지, 언니가 기타를 안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에밀리 언니에게는 라이벌이 있다. 똑같은 소식좌인 Dr.R 언니다. 둘은 맨날 자신이 더 많이 먹는다며 티격태격 싸운다. 이걸 옆에서 지켜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저녁 먹었어?"
"점심을 많이 먹어서..."
점심을 많이 먹었다는 게 고작 김밥 세 입이다. 무슨 음식을 먹든 세 입 먹고는 "배불러"를 외친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도긴개긴이다. 솔직히 누가 더 적게 먹는지 구별이 안 된다.
그런 에밀리 언니가 어느 날 나를 쌀국수집으로 끌고 갔다. 카풀 태워줘서 고맙다며 밥을 사겠다고 했다.
"언니, 진짜 괜찮아. 그냥 가자."
"아니야, 오늘은 내가 쏠게!"
언니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와 달랐다. 뭔가... 배가 고픈 눈빛이었다.
곧이어 쌀국수가 나왔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국물은 투명하면서도 뽀얗게 우러난 사골 육수였다. 쌀국수 면발은 반투명하게 익어 미끄러졌고, 그 위로 숙주, 고수, 라임이 수북했다. 고기는 얇게 저민 소고기가 국물의 온기에 살짝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데지 않도록 후후 불며 면을 말아 올렸다. 미끄러운 면발이 입안에서 쫄깃하게 씹혔다. 육수는 뜨겁고 깊었다. 고수의 향이 확 퍼지며 동남아 어딘가로 순간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먹는 속도가 꽤 빠른 편이다. 그래도 에밀리 언니는 소식좌니까 혹시라도 속도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반쯤 먹었을 때 옆을 슬쩍 돌아봤다.
'언니도 잘 먹고 있나?'
그런데.
에밀리 언니는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손을 들어 올리는 참이었다. 그것도 면 추가를 부르려고.
"저기요, 면 추가요!"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언니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잠깐. 평소에 최대 세 입 먹고 그릇 내려놓는 사람이 면 추가라고? 심지어 국물이 있어서 배가 금세 차오르는 음식을? 평소에 에밀리 언니의 먹는 양을 알고 있던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언니... 면 추가?"
"응. 오늘 왠지 당기더라."
면 추가가 나왔다. 언니는 태연하게 국물에 면을 풀어 넣고 다시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이게 그 연약한 에밀리 언니 맞나?
두 그릇을 해치운 언니는 만족스럽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역시 쌀국수가 최고야."
이런 선택적 소식좌를 본 적이 있나.
아무래도 면 요리에는 특이점이 있는 것 같다. Dr.R 언니도 라면만큼은 많이 먹는다고 했다. 에밀리 언니도 쌀국수만큼은 두 그릇을 해치운다.
결론: 소식좌에게도 소울 푸드는 있다. 그 앞에서는 새가 아니라 여우가 된다.
다음에는 에밀리 언니 몰래 Dr.R 언니한테 이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드디어 누가 더 많이 먹는지 승부가 날 것 같다.
다름다룸에서 여우가 나왔다는 에밀리 언니... 어쩌면 결과가 정확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