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하는 여행
딸과 비행기를 타고 일본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며 나도 모르게 카디건을 벗어
팔에 걸쳤다.
비바람이 달라붙은 습한 공기.
머리카락이 뺨을 때리며 열기를 더했다.
얼마 전 수능을 마친 딸은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 숨김없는
감탄을 터뜨렸다.
낯선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책임에서 잠시 벗어난 듯 보였다.
딸은 수능을 치르기 전부터
한 번의 기회를 더 바라고 있었다.
순리대로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마친 뒤
결정을 잠시 유보해 두었다.
사춘기를 통과하는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자마자
입시라는 문이 아이 앞에 놓였다.
그 문은 개선문이 아니라
넘어야 할 장벽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한 이후
아이에게는 학업보다 마음의 회복이 먼저였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친구와 방학 동안 다녀온
미국 여행은 아이를 조금 다른 얼굴로 돌아오게 했다.
그 이후 아이는 학교생활을 묵묵히 버텨냈다.
나는 그 변화가 궁금했다.
여행이 가진 힘이 무엇이었는지.
아이의 열정은 불꽃처럼 타올랐지만
나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아이의 알뜰함은 예상보다 철저했다.
택시는 선택지에 없었고,
버스조차 한 시간 이상 걸어야 할 때만 허락되었다.
바람에 나풀거리다 끝내 꺾여버린 우산.
우산을 하나 더 사자는 부탁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
우리가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인지,
우산이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이어졌다.
여행 사흘째,
나는 면만 먹어가며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내 생일이 겹친 날이었다.
종일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저녁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로
생일을 기념해 주겠다는 딸의 말에
그날 하루를 버텼다.
일주일 동안 숙소를 세 번 옮겼다.
같은 가격이었지만 등급 차이는 컸다.
가성비를 꼼꼼히 따진 딸의 선택이었다.
복통은 아침부터 이어졌고,
아무 생각 없이 신고 온 플랫슈즈 때문에
허리까지 삐끗했다.
딸은 학교 체험학습보고서 처리 문제로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오키나와에 도착한 순간부터
보호자는 딸이 되었고
나는 그저 따라다니는 사람이었다.
심신의 피로와 언어의 장벽,
알 수 없는 경계선 위에 서 있었다.
서러웠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들의 서툰 언어 속에서
나는 무엇을 들었고
얼마나 이해하려 했을까.
학교에서 친구들이 무서웠다고 말하던 아이.
딸에게 잠시 버려진 나.
체류 자격 앞에서 늘 불안해하던 사람들.
다행히 아이는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내 손에 소화제를 쥐여주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평소 약을 잘 먹지 않는 나였지만
그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약을 삼켰다.
딸이 내민 그 손이 너무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