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현재 일본의 한 지역이지만,
본래는 일본과 다른 ‘류큐’라는 독립 왕국이었다.
류큐 왕국은 중국(명·청), 일본, 조선, 동남아를 잇는
해상 무역 국가로, 바다를 통해 살아남은 나라였다.
군사력보다 외교와 교역을 택했고,
힘의 중심이 아닌 중간에 서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879년, 일본은 이 왕국을 강제로 편입하며
행정적으로 통합했다.
일본의 시선에서 류큐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시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현지 사람들에게 류큐는 과거가 아니라
언어와 제사, 시사 문화 속에
일본과는 다른 역사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일본이지만,
완전히 일본이 되지 않았고,
류큐는 사라졌지만 아직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은 나라로 남아 있다.
오키나와 곳곳에 서서
묵묵히 집과 마을을 지켜보는
사자와 개가 섞인 그 오묘한 얼굴이
처음에는 길고양이처럼 낯설어 외면하고 싶었다.
여행을 반쯤 할 무렵부터는
사자처럼 위엄 있고 개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수호신처럼 발걸음마다 함께하는 듯했다.
이미 일본의 현이 된 오키나와에서
시사는 에어리언이 되어버렸지만,
영혼은 그 땅속 깊이 스며 있기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여러 개의 몸을 가진 나무, 가주마루
비바람에 흔들리는 땅속에서
가주마루의 뿌리는 무언가를 꼭 붙들어야만 했다.
더 이상 기댈 수 없다 해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땅이 아니라면 하늘이라도 택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일본에 편입된 류큐의 상처는
뿌리처럼 너덜너덜하지만,
그 정신만은 거대한 군락처럼 우뚝 서 있다.
류큐는 작아서 사라진 나라가 아니다.
몸은 갔지만,
뿌리처럼 얽힌 정신은
끝내 이 땅을 떠나지 않았다.
때론 인간은 힘과 권위 앞에서조차 에어리언이 된다.
그 경계선에 서서, 소외된 채 버텨낸다.
나는 늘 성장을 추구해 왔다.
땅이 흔들려도, 기대던 것이 사라져도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공중으로 뻗으며
힘든 환경 속에서도 배우고, 성실히 움직였다.
버틴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성장은 버티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나는 ‘버티는 사람’보다
존엄이 지켜지는 환경에서만
성장은 비로소 축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침묵으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며,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자리에서
사람은 가장 깊이 자란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아무 데서나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 자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탔다.
딸은 조금은 아쉬운 듯 여권을 펼쳐 만지작거린다.
“엄마” 이 글 너무 감동이야! “
처음으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외교부장관
그제야 나도 처음으로 여권 문장을 제대로 읽게 된다.
정말로 감동이었다.
국가는 조용히 이 문장 하나를 품에 쥐여주고 있었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단지 이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보호 아래로 들어간다는 뜻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