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남편 돈을 다 까먹었어요.”
“집도 잘 안 치우는데도, 잔소리도 안 해요.”
무뚝뚝하게 말을 던지는
그녀의 얼굴이 이상하리만큼 해맑았다.
상담을 마친 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기품과 겸손이 가득했던 노신사의 첫인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결혼이민비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제 경위서와 사진, 문자내역으로
그 진정성을 입증해 주는 것이 행정 서류이다.
형식적 서류 구비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서로 다른 국적의 남녀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러브스토리를 문서에 담아내고,
추억의 사진첩을 엮어
설레는 신혼의 감정을 다시 불러 내려한다.
부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듣는 일은
노신사 부부의 사연은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5년 동안 동거 생활 이후 자연스레 이어진 혼인신고는
서류 위에 빨간 인주가 밋밋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당시 마흔 초반이었던 그녀는
그래도 초혼이었다.
아름다운 드레스와 결혼식 대신
작은 사업장 하나가 결혼의 증표가 되었다.
남편이 휴게음식점 운영을 원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됐던 그가
어둠은 막을 내리고
그들만의 작은 가게에서는 매일 작은 파티가 열렸다.
이웃과 웃음, 대화와 여유, 낭만과 돈이 교환되며
그곳은 하나의 가게를 넘어
한동안 정과 활기가 분출하는 분화구였다.
두 부부에게 행복은 무한할 수 없는 것일까.
호사다마의 액땜을 치러야만 하듯
함께 일하던 종업원 한 사람의 작은 날갯짓에 의해
사업장에는 거센 폭풍이 몰아쳤다.
즐거움과 흥으로 가득하던 공간에는
무질서와 혼탁한 공기가 유입되고
방심의 작은 틈 속으로 검은손이 조용히 움직였다.
결국 금고 안의 돈은 두 주인을 섬기게 되었다.
검은손은 균열의 기류를 끌어들여
질투와 이간질로 사람들 간의 정과 웃음을
삼켜버렸고,
횡령과 배신이 겹치며
“펜만 잡으면, 손이 먼저 날아가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있나요?”
모든 행정 서류가 갖춰지고, 이제 마지막 서명만 남았다.
서명하는 노신사는 시험지 답안지에 마킹하듯
꽤 진지한 표정이고,
아내는 애꿎은 펜 탓을 하며 너스레를 떤다.
떨리는 마음을 유머로 감싸려는 그녀의 속내가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남편의 바람으로 가게를 운영했고,
그 과정에서 돈과 사람을 잃은 후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남편 돈을 모두 날려버린
것처럼 말한다.
두 사람의 모든 재산 현황을
티끌을 모으듯 하나하나 서류로 쌓아 올렸고,
비자 발급을 위한 행정 서류는
그것은 단순히 종이가 모인 문서가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영혼을 끌어올리는
정신의 힘이 필요했다.
그 기록은 소득 요건과 품행 요건, 언어 요건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며,
노신사가 대한민국에서 체류할 자격이 있음을
내가 노신사 부부를 해 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가장 간절한 바람은
심혈을 기울여 서명하던 노신사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
백 페이지가 넘는 서류를 마침내 완성했고,
노신사는 새해를 맞이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배우자로서 당당히 체류자격을
얻게 될 것이고,
작은 손세차장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노후의 삶에 싹이 트는 이때,
그들의 세차장을 거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