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서류에 온기를 적는 일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생 큰딸과 초등학생 둘째는 아침부터 무척 분주하다.
각자 자기 햄스터 집을 청소하느라 추운 날씨에도 창문을 활짝 열고,
마스크까지 쓴 채 톱밥을 갈고 화장실 모래를 바꾸며 쳇바퀴를 씻어낸다.
둘째가 몇 달 동안 아빠를 졸라 부천까지 가서 분양받은 아기 골든 햄스터와,
다람쥐 색깔의 정글리안 햄스터다.
두 마리 햄스터는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몽이’라 불리기도 했다가,
더 좋은 이름이 있다며 ‘후추’가 되기도 했다.
이름은 수시로 바뀌었지만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햄스터 집은 솔직히 냄새가 나서 싫었다.
그래도 코로나로 답답해하던 아이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어주었으니,
잘 사준 선택이었겠지 싶었다.
스스로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조건이었기에 아이들은 본인들 방은 그대로 둔 채,
일요일 아침부터 햄스터 집 청소에만 열심이었다.
그 모습이 예쁘고 대견했다.
청소가 끝난 뒤에도 바닥 여기저기에 톱밥이 남아 있었고,
결국 내 일이 조금 늘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마무리했다.
외출했던 아빠가 들어왔는지 거실 쪽에서 갑자기 버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내가 분명히 햄스터 관리 제대로 하라고 했잖아!”
큰애를 추궁하던 소리는 곧 둘째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문 열어! 또 문 잠갔지? 안 열면 햄스터 다 버릴 거야!”
문을 잠갔다는 생각에 아빠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문 열어! 문 열어!”
한밤의 정적이 산산이 깨졌다.
한창 사춘기 앓이 중인 큰애는 자기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고,
둘째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아빠는 아무 설명도 듣지 않은 채,
햄스터가 들어 있는 커다란 집 두 개와 사료, 간식, 물그릇까지 들고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로 모두 버릴 기세였다.
어른인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열린 화장실 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그제야 하수구 주변에 널린 톱밥이 보였다.
아빠는 하수구가 막힌다며 계속 씩씩거렸고,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밤 열 시가 넘었어요. 목소리가 너무 커요.
애들, 낮에 한 시간 넘게 열심히 청소했어요.
어른들 마음에 꼭 맞게 청소하는 걸 어떻게 기대해요.
잘 설명해 주면 될 일을, 한밤중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둘째를 보니 막 잠에서 깬 얼굴이었다.
“너 혹시 자고 있었니?”
아이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자고 있어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말 안 했어?”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억울하지 않아? 자고 있어서 못 들었고, 낮에 청소 열심히 했다고 말하면 되잖아.”
그 말에 둘째의 눈물 보가 터졌다.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어른이라고 이기는 게 아니고,
힘이 세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야.
참말, 옳은 말이 이기는 거야.
앞으로는 상대 눈을 보고, 잘못 알고 있는 걸 하나씩 말해줘.
무서워하지 말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른이 가진 힘과 큰 목소리로 아이를 눌러버린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세상 곳곳에서 이런 일이 반복된다.
권위와 힘이 진실과 약자를 덮는다.
참말에는 관심이 없다.
힘없는 자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마치 그 밤, 윽박지르던 아빠처럼.
아이의 억울함을 더 대변해주고 싶었지만,
남편은 약간의 취기가 있어 그날은 참고 넘겼다.
내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둘째에게 사과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하 생략-
이 글은 햄스터를 키우며 우리 가정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 소재로,
몇 년 전 문예지에 기고하며 수필 작가로 등단하게 된 생활에세이다.
아빠와 아이의 상황을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약자가 억울한 일을 겪는 장면은 가정이든 사회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일기처럼 써 내려갔다.
당시 나는 아이가 혼이 나서 속상해하는 마음을 넘어,
앞으로 살아가며 힘과 권위에 눌려 억울한 일을 겪지는 않을지 염려했다.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싶었다.
남편은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지만,
가끔 욱하는 성질이 올라오면 대화가 단절된다.
그의 큰 목소리에 기가 눌려 말문이 막힐 때,
나는 감정과 이성의 각을 맞추기 위해 글을 선택한다.
경위와 인과관계, 그리고 나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문자로 정리해 전달한다.
시각으로 노출된 문자의 논리적 전개는 감정의 상투를 베어내고,
상대를 합리적인 사고로 이끈다.
결과는 늘 긍정적이었다.
문예지에 등단한 뒤에야 남편은 그날의 햄스터 사건이 하나의 책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던 행동을 스스로 절제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말로 표현하는 데 서툴고, 글로 표현하는 일은 더 어렵다.
서류는 차갑다.
행정과 제도는 선을 긋는다.
사람은 그 경계에 서는 순간 외부인이 된다.
그러나 규칙과 제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설명되지 못한 사정을
외면한 행정은 결국 또 다른 억울함을 만든다.
차가운 아이스크림도 온기를 지닌 사람의 혀와 만날 때 비로소 달콤해지듯,
억울함은 설명이 되고, 처벌은 이해로, 단절은 회복으로 나아간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서류도
사람의 희로애락이 스며들면 더 이상 종이가 아니다.
가정에서 약자인 아이들을 위해
그 견인차가 되었던 내가,
이제 세상의 제도를 향해
서류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이유다.
열음출판 | Yeol Eum Sketch
AI-generated image, 2026.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