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의 작은 소녀(존엄)
어릴 적 가끔 소심한 가출을 시도했다.
누군가 찾아주길 바랐기에 너무 멀리 가버리면 안 되었다.
할머니 방 안에는 월넛색 긴 문짝이 달린 이불장이 있었다.
반쯤 채워진 푹신한 이불 위에 웅크려 누웠다.
장롱 안에 밴 할머니 냄새는 유난히 짙었다.
깜깜한 농 안에서 들리는 할머니의 음성은 멀고 낯설었다.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지만, 부르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눈앞에 보이는 농문 나뭇결이 선명해졌다.
그 무늬들은 어느새 얼굴처럼 보였다.
엄마와 아빠, 언니, 동생의 얼굴이 되었다가
다시 아무것도 아닌 나뭇결로 돌아갔다.
내 얼굴을 닮은 무늬를 찾다 보면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슬픔을 밀어내고 차가운 판단을 가져오게 했다.
눈물이 나오기 전 농 문을 밀어낼 기회를 엿보았다.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티브이 앞에 앉았다.
할머니도 엄마도 그대로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집.
나는 그걸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었다.
장애가 있는 언니는 가끔 사라졌다.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두려운 시간이었다.
사이렌이 울리듯 모든 것이 멈추고
언니에게 집중되었다.
언니는 다행히 하루가 지나기 전에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
버스 아저씨에게, 경찰 아저씨에게,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언니가 사라질 때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찾아진 적이 없었다.
엄마가 남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느낄 때면
더 멀리 가출했다.
어쩌면 장롱 속에 숨은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건 아닐까.
옥상에 올라가 돗자리를 깔았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구름은 점점 할머니 얼굴, 엄마 얼굴을 만들었다가 흩어졌다.
햇살에 눈이 따가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내 얼굴을 닮은 구름을 찾으며 다시 눈에 힘을 주어보았다.
일 층의 상황이 조금은 궁금했다.
내가 없어진 건 알고는 있을까.
혹시 언니가 없어질 때처럼 가족들이 놀라면 어쩌지.
옥상에 올라가자고 속삭였던 ‘작은 나’를 다시 설득했다.
이제는 기다리지 말자고,
슬픔에 오래 머물지 말자며,
기다림보다 그리고 존재의 증명보다
더 중요했던 건
생각이 자라 가며
나는 기다리는 대신
비합리적이거나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 자리에서는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건 나를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나는 어릴 적 찾아지지 않은 이유가
덜 소중해서라고 오해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사랑은 내 곁에 머물러있었지만
내게 닿는 언어가 부족했을 뿐이라는 것을.
내게 설명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누군가 경계선에서 서성이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열음출판 | Yeol Eum Sketch
AI-generated image, 2026.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