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의 존엄
중학생이 된 둘째 딸은
학교생활이 즐거운지 자칭 ‘인싸’라 한다.
항상 낙천적이고 밝아 그 모습이 대견했다.
그러던 아이가 전학시켜 달라며 졸라댔다.
학교생활이 재미없다는 이유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감추어둔 비밀처럼
아이는 밀봉되어 있던 감정이 터지듯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너무 싫어.”
학기 초 통화한 적이 있던 담임선생님의 음성 이미지는
편안하고 다정했기에 그 말은 더욱 의외였다.
아이는 학교에서 실시한 미디어 중독 검사에서
상위 등급으로 판정받은 적이 있다.
친구들은 검사 항목에서 거짓으로 체크했다고 들었다며
앞으로는 자신도 친구들처럼 하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느 날, 학급 내 일반 설문조사에서
설문지를 조금 늦게 제출한 일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반 친구들이 모두 듣는 교실에서
아이를 향해 언어의 폭약을 던졌다.
“스마트폰 중독자는 역시 다르네.”
“어서 빨리 제출해!”
검사 결과 이후 아이의 이름은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었다.
아무 관련 없는 상황에서도
학급의 인싸였던 아이는
순식간에 스마트폰 중독자로 전락했다.
아이의 학급 내 비밀들이 내 앞에 펼쳐지자
아동학대. 명예훼손.
전직 감수성이 들끓으며 순간 떠오른 단어들이었다.
나는 다음 날 학교 상담을 계획했고,
눈을 뜬 채 밤을 지새웠다.
아침 뉴스에서는 서이초 교사 사건과 비슷한 사례들이
보도되고 있었다.
예민한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의 노고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40년 넘게 교육자로 헌신했다.
때로는 딸보다 제자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어린 마음에 섭섭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교육자였다.
아이의 선생님을 질책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했다.
또한 아이의 말만 듣고 속단할 일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이와 선생님 사이에 오해가 있다면
먼저 풀어 관계를 회복하는 것,
아이를 불러 선생님의 입장을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며,
자녀에게는 든든한 부모인
지칠 때는 짜증도 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도 덧붙였다.
친구들끼리 다투었다가 다시 화해하듯
선생님과의 관계도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핸드폰 사용을 더 자제하자고 약속했고,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솔직하게 검사에 임한 태도는
잘한 일이라 칭찬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해
오해를 풀어보겠다고 했다.
긍정의 뜨개코는 이미 엉킨 실타래를
절반쯤 풀어낸 것처럼,
대화가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상담 날짜를 잡고 나니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문득 문예지에 수필 작가로 등단한 첫 작품
『오해와 진실의 사이』를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자녀 중 둘째가 주인공으로,
사소한 오해로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아이를 설득해 선생님께 책을 전달했다.
책 표지 안쪽에는 작은 메모를 붙였다.
‘학부모의 가치관과 교육관을 알아주신다면
상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긴장된 눈빛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선생님은 책 선물에 감사하며
의도를 알고 밤새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미 내 마음은 카스텔라처럼
촉촉하고 달콤해져 있었다.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차분히 전했다.
아이의 말만을 일방적으로 믿기보다는
선생님의 입장을 듣고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아이의 말에 과장이 없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공부만 알고 예민한 다른 여학생들에 비해
아이의 털털함과 유쾌함이 늘 편안하고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걱정됐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에 잘못된 방법을 썼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상처받았을 아이가 마음에 걸려 속상했다고 했다.
나 또한 부모로서 아이를 충분히 살피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교육자인 아버지를 존경하듯
모든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아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다음 날, 선생님은 아이를 조용히 불러
진심으로 사과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어린 제자에게도
겸손히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사과 한마디에
전학 가고 싶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친구들 사이를 오가는 사춘기 소녀로 돌아갔다.
상담을 마치며 선생님과 약속했다.
이 사연을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답했다.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결과는 어땠을까.
오해는 늘 진실보다 빠르다.
그러나 인내를 필요로 한 진실은
멈추어 기다리는 동안
열음출판 | Yeol Eum Sketch
AI-generated image, 2026.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