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의 침묵
여대생 시절, 한여름날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혼란스러웠던 기억 거리가 있다.
지방 한 도심에서 많은 인파와 무더위 속에 파묻혀
인도를 걷던 중 마주 걸어오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제 갈 길 가기에 분주한 도심 거리에서
나를 스캔하며 다가오는 그 남자를 향해,
내 눈동자도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였다.
자석에 이끌리듯 어느새 난 그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손이 나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알 수 없는 폭력에
다리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한쪽에 서서 한참 마음을 추슬렀다.
뺨을 맞는 순간
통증도, 주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스스로 달래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것이 차라리 나은 거야'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이 차라리 나은 거야'
얼마 전 세탁소에서 겨울 코트 세 벌을 찾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고등학교 남학생이 울며 40대 남자를 따라다니고,
40대 남자는 귀찮다는 듯 욕을 하며 남학생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쳤다.
그리고 난 무거운 겨울 코트를 들고 고등학생을 따라다녔다.
코트의 무게감에 결국 학생을 시야에 놓친 후 집에 돌아왔다.
학원에서 막 돌아온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리 동에서 어떤 아저씨가 남학생을 주먹으로 때려서 뒤에 있던 자전거가 모두 쓰려졌어.
사람들이 보고도 그냥 지나가서 내가 동영상을 찍었어.”
그 말에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이 올라왔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이제는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
1층에 내려가자마자 남학생이 울며 서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얼굴빛이
겨울 냉기보다 차가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우리 동에 사는 학급 친구에게 문제집을 빌리러 왔다가
담배 피우는 남자에게 금연 구역이라고 말한 순간
주먹이 날아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보고도 그냥 지나쳤고,
증인이 없어 그 남자를 따라다녔지만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약속했다.
그가 도망친 것을 목격한 증인이 되어주고,
딸이 찍은 동영상도 전해주겠다고.
그리고 부모님께 꼭 알리고, 112에 신고하도록 말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그리고 남학생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섰다.
몇 분 뒤, 112 순찰차가 아파트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하면 통증이 남는다.
그러나 더 깊은 고통은
그 순간 내가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취급될 때다.
폭력은 신체를 타격하지만
수치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인격이 소멸되는 감정이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고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주고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느낄 때
나는 다시 사람으로 서게 된다.
아무도 옆에 없었던 여대생 시절,
수치심을 이겨내기 위해 한쪽에 숨어있었다.
지나가는 한 남자가 나를 때렸지만,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다.
말하지 못했던 나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