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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품

아이스 아메리카노

by 열음

직장 후배 중에는 밥보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자칭 된장녀라 했던 아메리카노 마니아가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알뜰한 점심을 마친 후에는 항상 외부로 나가 스타벅스에서 밥값보다 비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시면 힘겨운 남은 오후를 버틸 수 있다 한다. 입맛이 없어 밥은 건너뛸지언정 하루도 거르지 않는 책상 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후배에게 사내 반려 품였다. 그녀의 시원한 성격을 닮은 얼음 덩어리와 뒤섞인 스파클링은 거무스름한 커피도 반짝거리게 하였다. 그녀의 기다란 빨대에 쪽쪽 빨려 들어가는 커피 맛이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맛인지 물어보면, 심신이 청량해지는 기분을 말로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 한다. 커피를 마신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긴 했지만, 맛보다는 특유의 느낌을 즐기는 것 같아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부모라면 통과의례와 같은 피곤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직장맘은 치맛바람 부대 왕언니에게 휘둘리기 쉽다. 아이들 간 놀이 싸움은 엄마에게도 책임이 전가되어 수습하느라 진이 빠졌다. 직장에 몰두하다 보면 싸움 경과를 알지 못하여 내 아이 잘못을 추궁할 때 무방비로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엄마가 바쁜 것이 이유라는 판결을 하기도 한다. 직장맘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면 죄책감에 시달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처분을 따르게 된다. 왕언니의 치맛바람은 태풍보다 거세어 눈에 거슬리는 아이들과 엄마들을 따돌렸고, 내 아이도 미운털이 박혀 따돌림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난 불행의 덫에 걸린 것처럼 마음의 고통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같은 배에 타야 할 남편은 말 많고 수준 낮은 여편네를 신경 쓴다며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더욱 외롭게만 느껴졌다.


엄마 마음은 모르고 천진난만하기만 한 아이, 공감대 형성이 안 되는 남편 그리고 여덟 살짜리 아이를 평가하는 엄마들, 어느 누구와도 소통이 안 되는 마음의 벽은 더욱 높이 쌓여만 가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자존감은 상실되어 갔다.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아침이면 기계처럼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여 태연하게 일 잘하는 커리어우먼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지쳐 퇴근하면 밀린 육아와 가사에 대한 스트레스로 아이들에게 화를 쏟아붓고는 잠든 아이들을 보고 미안하여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따스한 봄과 활기찬 여름은 생각나지 않고 고독한 가을과 매서운 겨울만 기억나는 시절이었다. 서글픈 발라드 음악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졌기에 비가 오는 날 쏟아지는 빗물은 모두 내 눈물이었다.




지친 일상은 전진하던 인생의 장해가 되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퇴근 후 아이들을 챙기고 재우면 밤 11시가 되었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져 공원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을 위로하며 한 바퀴 돌고 상대를 용서하며 또 한 바퀴 돌며, 미래의 꿈을 기대하며 마지막 한 바퀴를 돌면 어느덧 자정이 되어 갔다. 그리고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번화가라 다행히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느 곳이 있었다.


자정에 커피숍으로 들어가 메뉴판에 쓰인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유난히 눈에 잘 띄었다. 항상 상쾌, 유쾌했던 직장 후배가 문득 떠올랐다. 녹차나 과일차만 먹었던 나지만 못 먹을 것도 없기에 통쾌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처음으로 주문한 커피는 목이 길게 빠지다가 중간에 에스라인 굴곡이 있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얼음과 몽글거리는 거품이 잘 어우러진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운동한 후에 목이 타들어 가서일까. 가슴속에 화가 있어서일까.

남편이 한여름에 맥주를 들이켜듯 나도 능숙하게 단숨에 꿀꺽거리며 넘겼다. 자칫 큰 얼음덩어리를 삼킬 뻔했다. 마지막 한 방울도 아까워 남기지 않고 커피 액을 추출하듯 입안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내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이제야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배가 이런 느낌을 즐긴 것이구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시원함은 막힌 가슴을 더욱 시원하게 뚫어주고 복잡한 생각을 멈추게 하여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쓴맛은 동병상련을 공감한다는 듯 마음의 쓰라림을 다스려주며 위로해 주었다. 아이스는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의 열을 식혀 평정심을 주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항상 밤 11시를 고대하며 힘든 나날을 버텨냈다. 애들을 재운 후 공원을 세 바퀴를 돌고 자정에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현실 도피의 돌파구가 되었다.



사람과는 소통이 안 되어 힘들었던 시기에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내 영혼과 호흡하며 소통해 주었던 것은 아메리카노였다. 숨이 막힌 현실이지만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커피 향을 맡고, 숨을 길게 내쉰 후 커피 한 모금 음미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때부터 아메리카노는 아이스든 핫이든 삶의 반려품이 되어 커피 예찬가가 되었다. 원샷에서 시작하여 투샷으로 쓴맛의 레벨이 올라가고 커피가 혀끝에 닿는 순간 맛을 감별하는 예리한 미각이 잘 발동한다.

단맛, 고소한 맛, 산미, 쓴맛 등등 기분에 따라 마신다. 집에서는 편하게 더치커피, 여름에는 콜드블루, 카페거리에서는 드립커피, 배가 고플 때는 카페라테 등 계절이나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마신다. 커피숍이 보이지 않는 시골을 가면 마음이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문화센터에 가서 직접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법을 배우며 점점 커피에 즐거운 중독이 되어갔다.




내 옆에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고마운 반려품 아메리카노다. 커피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문을 열고 새롭게 경험해 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처음에는 향을 맡아보며 분위기를 마음으로 느낀 후 적응이 되면 미각으로 음미하면 된다.


마음으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지금도 창작의 시간 동안 항상 나와 함께하는 영원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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