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수속성?

실연의 아픔은 물에 녹이는 수린이 일기

by 팜팜


수영인들 사이에는 “슬픔은 수속성”이라는 말이 있다.


슬픈 감정은 물에 들어가면 녹아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별한 지 4일째,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민주야, 얼굴에서 슬픔이 묻어나와…”라고 한다. 새해를 맞아 9 to 9으로 일하겠다는 야무진 목표를 세웠지만, 이별 생각을 견디지 못해 5시에 퇴근하고 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해줄 말 목록을 적고 있다.


헤어지기 전, 프리다이빙을 좋아하던 전 남자친구에게 맞춰주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나도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고 싶었던 건지 내 마음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프리다이빙을 해보고 싶다는 결심만은 분명했다. 강사분이 괜찮은지 전 남자친구에게 물어본 뒤 결제하려 했지만, 그 사이에 이별이 있었다. 고민 끝에 프리다이빙은 결국 내가 해보고 싶었던 취미였다고 생각했고, 체험 수업 결제를 취소하지는 않았다.


원래 가던 아침 수영은, 수영을 하면 전 남자친구가 생각날 것 같아 하루는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오늘 가보니 나는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워밍업으로 자유형을 돌 때는 ‘오빠가 이걸 고치라고 했었지… 앞으로 그런 말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핀을 신고 접영을 할 때는 그저 ‘접영 갈겨.’라는 생각으로 팔딱거리며 물을 갈랐다.


내가 수영을 처음 시작한 건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수영이 하고 싶어 집 근처 문화센터에 다니며 자유형과 배영을 배웠다. 저체중에 키도 작은 나는 늘 반에서 가장 느렸다. 방학 특강 수업이었는데 여자아이는 나 혼자였고, 승부욕만 쎈 나는 다른 남자아이들을 이겨보겠다고 아등바등 물을 갈랐다.


대학에 들어와 테니스를 치면서 체형은 조금 더 단단해졌고, 운동을 좋아하게 됐다. 근력운동을 하고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됐다. 그러다 학부 3학년 여름방학부터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면서 활동량이 급격히 줄었다. 운동도, 처음 겪는 연구실 생활의 스트레스도 해소할 곳이 없어 점점 지쳐갔다.


시간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는 운동이 필요했고, 그 답이 아침 수영이었다. 아침에 수영을 하면 운동량과 스트레스 해소 시간이 아예 확보된다. 7시 10분 수업을 가려면 정확히 6시 32분에 일어나야 했고, 그러려면 밤을 함부로 쓰지 못했다. 퇴근 후 버리는 시간 없이 바로 잠들 수 있는 생활 리듬도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차도 몰지 못했고, 학교 안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수영을 가려면 한참을 걸어 버스를 타야 했다. 처음 한 달은 택시 반, 버스 반으로 버텼지만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수영을 위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아침 수영은 주차와의 전쟁이었다. 이중주차는 기본이고, 약한 자는 수영할 수 없는 주차난 속에서 극 초보운전이었던 나는 수업 시작 25분 전부터 도착해 주차 자리를 찾았다. 한 번은 너무 늦어 차를 대려던 아저씨에게 창문을 내리고 싹싹 빌었다. “제가 정말 초보운전이라서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날, 나를 가엾이 여긴 아저씨는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그렇게 3학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두 번의 방학 동안 총 4개월을 수영했다. 평영까지는 어느 정도 배웠지만, 끝내 마스터하지 못한 접영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5학년 1학기를 마치고 졸업한 뒤, 대학원 입학 전 두 달 동안 대구 본가에서 백수 라이프를 즐기며 오전 9시 반 수영 수업을 등록했다.


대구에서는 주부 아주머니들과 함께 회식도 하고 완전 즐기면서 수영을 했다. 심지어 두 달밖에 안배운 내가 다시 대전으로 올라가기 전 강사 선생님까지 초대해 송별회까지 하는 로컬 수영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대구에서 접영까지 배우고 난 뒤, 여름 휴가를 가는 곳마다 물만 보이면 뛰어들었다. 예쁜 머리나 비키니에는 관심도 없이 수모와 원피스 수영복을 챙겨 물속으로 들어가 접영을 연습했다. 그렇게 꿈같던 백수 생활이 끝나고 이제 수영할 일은 없겠지 생각하며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뜻밖에도 학교 교양수업 중에 수영 수업이 있었다. 주 1회 학교 수영장에서 하는 수업을 등록했고, 어느 날은 친구에게서 교내 수영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는 연락도 받았다. 수영하는 젊은 대학생들과는 거의 접점이 없던 터라 겁이 났지만,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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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전한 수영대회는 대유잼의 향연이었다. 나는 ‘이제 접영까지 할 수 있다’며 만족하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내가 하는 건 그저 허우적거림에 가까웠다. 수영동아리인 가오리 사람들이든 아니든, 기가 막히게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며 계속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에 이런 사람들이 숨어 있었다고? 다들 평소에는 어디 있다가 여기서 이렇게 괴물처럼 수영하는 거야?’


그래서 작년 12월부터 다시 수영 수업을 등록했고, 자연스럽게 수영을 계속하는 사람이 되었다. 월·화·목·금 아침에는 수영을 하고, 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 저녁에는 테니스를 치며, 주말에는 시간이 되면 웨이트를 한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규칙적인 활동량을 유지하기 어려웠는데, 아침 수영은 운동과 스트레스 해소 시간을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7시 10분 수업을 가려면 정확히 6시 32분에 일어나야 하고, 그러다 보니 밤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하루의 리듬이 단순해진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지금의 전 남자친구는 학교에서 수영을 하다 만났다. 그리고 꽤 거하게 차였다. 이별에 한쪽의 잘못은 없지만, 나는 그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물만 떠올려도 그가 생각나 수영이 잠시 꼴보기 싫어졌다. 이별은 월요일이었고, 그 주에는 화·목·금, 세 번이나 수영이 남아 있었다. 서러웠지만 핀데이와 랩타임 측정을 생각하면 아예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화요일 하루만 빠지기로 했다. 알람은 꺼두었지만, 혹시 눈이 떠지면 가자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리듬을 기억하는 몸은 어김없이 새벽에 눈을 떴지만,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수영 수업이 없는 수요일은 전 남자친구에 관한 글을 쓰며 버텼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 다시 정확히 6시 32분에 눈을 떴다. 갈까 말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먹은 매운 음식 탓에 배까지 아팠지만, 일단 가서 화장실부터 가자는 마음으로 수영장에 향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간 수영은, 결과적으로 유잼 대잔치였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핀데이이자 접영데이였다. 강사님께 칭찬도 들었다. 전 남자친구가 알려준 대로 비트킥을 차니 워밍업 자유형도 쉬지 않고 돌 수 있었다. 워밍업을 도는 동안에는 생각이 많이 났지만, 접영을 날치처럼 반복하다 보니 잠시 이별 전의 평소 텐션으로 돌아왔다. “접영만 조금 더 손보면 다 되겠는데.”라는 말에 괜히 엉덩이 춤이 나왔고, 배영 바사로킥과 어깨 교정, 접영 손동작까지 강사님이 봐주 덕분에 수확이 많은 날이었다.


수영 후 연구실에 출근해 재회 타로 영상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슬픔은 수속성이 맞다. 수영을 하면 감정들이 물에 씻겨 내려간다. 스트로크 하나하나에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사라진다. 강사님의 빡센 뺑뺑이와 “아가씨가 젊으니까 앞으로가~”라는 아주머니들의 말에 의해 1번으로 쫓기듯 돌다 보면, 숨이 가빠질 뿐이다. 슬픔을 떠올릴 틈은 없다.



친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종의 사유로 애증의 취미가 된 수영이 있다. 앞으로 내가 이별에 조금 더 무뎌지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된다면 이 취미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