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은 어디에나 있다
타성에 젖은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힐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잠시간 벗어나 평소와는 다른 형태의 휴식을 취함으로써 약간의 위안이나마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드는 것이다. 마음의 안정을 얻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이를테면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 볼 수도 있고, 공연, 음악, 그림 등 갖가지 예술 작품에 마음껏 몰두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영화 역시 훌륭한 힐링 수단이 될 수 있겠다. 목가적인 전원생활이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다수의 작품들이 소위 이야기하는 ‘힐링 영화’로서 이미 활발히 소비되고 있지만, 오늘은 조금은 다른 형태의 힐링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경우에 따라 힐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특별한 형태의 위안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실격,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너무 한낮의 연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지금도 꽤 빈번하게 읽는 것은 물론, 한때 정말 빠져 지내다시피 읽었던 책들의 제목을 일부 나열해 보았다.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 내면의 나약함 내지는 찌질함을 아주 세밀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것인데, 어느새부터인가 스스로의 옹졸함에 치가 떨릴 때마다 이러한 작품들에 자연스레 손을 뻗는 경우가 매우 잦아져 버렸다. 이러한 책들을 읽다 보면 ‘나의 심약함도 그렇게까지 유별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한심함에 다시 한번 몸부림치면서도, 그로부터 또 적잖은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던 것이다.
<버닝>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선상의 연장에 위치해 있는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관적이지 않은 형태의 플롯과 특유의 작가주의적 시선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모호함은 이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종일관 불안한 생각들을 떠오르게 만들지만, 인간 내면의 불안정성에 대한 이토록 적나라한 방식의 묘사는 한편으로 비슷한 종류의 혼란이나 무력감을 경험해 본 이들에게 남다른 안도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문득 ‘정말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종류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맞을까?’와 같은 의문이 들 때면, <버닝>이라는 신경안정제가 좋은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포크 호러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이 영화를 힐링 영화로서 소개한다는 것에 다소간의 의구심을 품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친 일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구원을 찾는 주인공 ‘대니’의 서사에 집중해 본다면 <미드소마>를 마냥 힐링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본작 특유의 기이한 분위기가 자아내는 불쾌함과 찝찝함을 완벽히 외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공포감 뒤에 숨겨진 <미드소마>의 구원적 메시지는 비교적 명료한 형태로 다가온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완벽히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때로는 모든 번뇌로부터 멀찍이 달아남으로써 평안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선사하는 기괴한 인상에 압도되어 그 서사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울 것만 같다면, 그것 역시 나름대로 나쁘지만은 않은 힐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미드소마>의 서사에 집중함으로써 본작이 내포하고 있는 구원적 메시지에 집중하건,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끝도 모를 불쾌함에 사로잡히건 간에, 우리가 <미드소마>를 통해 현실의 모든 문제로부터 잠시나마 완벽히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미래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매우 판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을지도 모를 수많은 인연과 기회들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는 일은 때때로 우리를 아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잠깐의 망설임으로 인해 건네지 못했던 말이나, 자그마한 용기가 없어 내리지 못했던 결단, 그리고 의도치 않았던 실수로 인해 발생한 비극이 평생의 한으로 남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은 편이니 말이다.
<우연과 상상>은 우리네 삶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우연과 상상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를 매우 단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본 작품이 그리는 우연과 상상의 무한한 확장성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훌륭한 위안으로 자리 잡는다. 끝없는 우연과 상상으로 인해 속절없이 변해만 가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미래를 보고 있노라면, 후회로 점철되어 있는 지금의 우리 인생 역시 어쩌면 다른 미래의 우리가 수없이 선망하던 우연과 상상의 산물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많은 미래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지만, 지금의 삶이야말로 최선의 미래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으니 가히 나쁘지만은 않은 현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