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미혼이다. 혼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혼에 대한 환상 비슷한 무언가가 있기 마련인데,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이 맞는 반려자와 함께 평생을 기약하는 삶이라니,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어.
그런데 요즘은 결혼에 대한 기대나 환상보다도 현실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사는 게 팍팍해서'라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여기에 소위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각종 미디어의 영향이라는 것도 분명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반쯤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겠지만, 사실 미혼자 입장에서는 그 '반쯤'이라는 것에 신경을 쏟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지. 우리는 정말로 결혼은 미친 짓인 시대에 태어나고 만 걸까? 그들이 말하는 대로 결혼은 미친 짓이 맞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둘 다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면 나는 결혼이 정말 하고 싶거든.
처음부터 이렇게 어려우면 어떡해, <초행>
7년 차 커플 수현과 지영에게 슬슬 결혼을 생각해야만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지영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 빨리 결혼했으면 하는 눈치지만, 수현과 지영은 점점 현실처럼 다가오는 결혼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미술 강사와 방송국 계약직. <초행>의 두 주인공 '수현'과 '지영'의 직업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을 때, 이 정도면 사회에 온전히 자리잡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결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완전히 틀린 견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가끔은 우리가 '결혼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 너무 과한 집착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있다.
'좋아, 이 정도면 이제 결혼해도 되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부부가 전부 여유로운 상황 속에서 결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딘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과감하게 결혼에 뛰어들어보고자 하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초행>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안 그런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다들 비슷한 걱정 하면서 사니까말이다. 우리라고 해서 특별히 겁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그냥 이러고 사는 거지, <잠 못 드는 밤>
아직도 연애를 하는 듯 애틋하기만 한 결혼 2년 차 부부 주희와 현수.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소박한 일상 속의 행복을 즐기며 알콩달콩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주희는 현수에게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현실적인 고민에 잠긴 두 사람은 밤이 깊어도 쉬이 잠들지 못한다.
물론 여차저차 결혼까지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앞에 있는 수많은 현실의 장벽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 못 드는 밤>은 용기 있는 결혼 이후의 현실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세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행복을 모두 누리는 것은 어쩌면 조금 힘들 수도 있다는 점에는우리 모두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물론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넓은 집에 살지 않아도, 예쁜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동경이나 아쉬움까지 완전히 지운 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든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생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게 어디 결혼 생활뿐이랴. 학교 성적이든, 직장 생활이든, 인간 관계든 어차피 아쉬움으로 점철된 인생인데, 굳이 결혼 생활의 아쉬움을 향해서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주시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겠지? 부디 그렇다고 해줬으면 한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평생 결혼 못 할 것 같아서 그래⋯
사랑은 정말로 변치 않는 것일까? <내 아내의 모든 것>
남들이 보기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최고의 아내 정인. 하지만 입만 열면 쏟아지는 그녀의 불평과 독설은 남편 두현으로 하여금 하루에도 수백 번 이혼을 결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차마 이혼 이야기를 직접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두현은 전설의 카사노바 성기를 찾아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는데⋯
결혼 생활의 지속은 곧 연인이었던 반려자가 가족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관계의 초기에 느꼈던 설렘이나 두근거림은 다소 무뎌지고, 그 자리를 익숙함과 편안함이 대신 차지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익숙함이나 편안함이 아닌 짜증이나 권태가 그 자리를 대신 비집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주인공 '두현'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지금 사랑하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자신이 없어서, 혹은 현재 가지고 있는 애틋한 감정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서,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도 분명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돈이니, 집이니, 아이니 하는 것보다도 이쪽이 훨씬 더 현실적인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관계와 감정의 양상에 따라 결혼은 미친 짓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에 대한 정답은 결혼을 하지 않고서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시 뒤로 한 채 현재의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고 솔직해지는 것. 애석하지만현재로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오직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