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실수와 후회로 가득하다. 어쩌면 나는 인간이 아니라 흑역사 생성기 비슷한 무언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어쨌거나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내가 보기에 한없이 미숙해 보일 수밖에 없고,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미래의 내가 느낄 감정 또한 분명히 이와 유사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흑역사가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비해 점점 성숙해지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와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부끄러울 수는 있을지언정 흑역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의 일부다. 과거의 실수가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미성숙했던 시절의 선택이 평생의 후회나 반성으로 남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꼭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쩌겠어. 그게 나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안 그랬지, <최악의 하루>
배우 지망생 은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를 만난다. 그에게 길 안내를 해주고 헤어진 뒤, 배우로 활동 중인 남자친구 현오를 만나기 위해 드라마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하는 은희. 한편,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본 은희의 전 애인 운철 또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남산을 찾아오는데⋯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 은희. 과연 그녀의 하루는 순탄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때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런 사람과 인연을 지속했을까 하는 생각. 아마 누구나 한 번쯤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최악의 하루>의 주인공 '은희'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한 여파를 쉽게 외면하거나 끊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흑역사란 결코 혼자서 간단하게 인생의 뒤안길로 묻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항상 유념할 필요가 있다. 흑역사로부터 파생된 인연이나 관계가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재난과도 같은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애석한 일이지만 과거로 돌아가 모든 것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뭐 어떻게 하겠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안 그랬지.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그 이유도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서 한 작품의 연출을 맡으며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배정받게 된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점점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외면하고 있었던 과거의 아픔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나 파장을 예상하지 못한 채 저지르는 실수가 있는 한편,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올바른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경우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분노하거나 그 이유를 캐묻기는커녕 자신이 외도를 눈치챘다는 사실조차 철저히 숨기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아마 아내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알고 있던 아내라는 인물에 대한 믿음,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에 대한 불안 등의 심리가 뒤섞여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가후쿠'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아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볼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깨닫게 된 그 순간부터, 아내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지 않는다면 나중에 틀림없이 후회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경험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매순간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야 말이지.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동주>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 운동에 매진하는 몽규와,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는 동주. 두 사람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윤동주는 자신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성 짙은 부끄러움을 스스로의 시에 녹여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부끄러움을 힐난하거나 책망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스스로 부단히도 노력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부끄러움과 분명히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순간의 부끄러움을 인생의 부끄러움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우리는 그러한 순간들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뭐 어쩌겠어. 눈 딱 감고 한번 부딪혀보는 거지.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