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가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 못할 때

by 박해경

오랫동안 나는 커리어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다.

20년의 경력, 이름이 실린 기사, 축적된 신뢰. 그것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나를 안전한 쪽으로 데려다줄 방패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커리어는 ‘지나온 시간’을 증명할 뿐, ‘다가올 시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익숙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가 온다. 이전에는 통했던 말과 선택이, 이제는 공허하게 느껴졌다. 성실함이 곧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앞에서, 개인의 노력은 생각보다 무력했다. 그때부터 커리어는 자산이 아니라 질문이 되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이 방식으로 계속 살아도 되는가”라는 질문.

기자로서 나는 늘 변화의 현장을 취재해왔다. 산업이 바뀌고, 직업이 사라지고, 개인이 밀려나는 장면들. 그러나 그 변화가 나를 통과할 것이라 상상하지는 않았다. 커리어는 늘 타인의 이야기였고, 나는 기록하는 쪽에 서 있었다.

하지만 삶은 언제든 입장을 바꾼다.

관찰자가 당사자가 되는 순간, 언어의 온도도 달라진다. 그제야 이해했다. 많은 사람들이 커리어의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실패가 아니라 공백이라는 것을. 더 이상 자신을 설명할 문장이 없을 때, 사람은 막막해진다.

이 글은 커리어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커리어 이후의 삶을 상상하기 위한 기록이다. 보호막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은, 직함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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