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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에로화이바 Aug 02. 2024

[뜀_001] 나의 오랜 달리기

아마추어지만, 프로처럼

(* Pixabay로부터 입수된 Thomas Wolter님의 이미지 입니다.)


달리기를 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좋시작한 운동이었는데, 어느새 달리기는 내 일부가 되어버렸고, 달리기로 SNS를 해볼까, 에세이를 써볼까 고민하다 엎기를 몇 번, 몇 줄 끄적여보자며 모니터 앞에 앉았다.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삼십 초반을 지나고 있다.

삼십 대 때의 달리기와 이십 대 때의 달리기는 그 모습이 꽤 다른데, 20대 때는 몇 번이고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비를 버텨내면 그럭저럭 또 달려지는 미친 체력의 달리기를 즐겼다면, 30대 때는 다치지 않고, 무리하게 기록을 단축시키지 않는 달리기를 추구하게 되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이십 대가 아니고, 직장 생활로도 충분히 피곤한데 기록에 연연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고. 4분 50초대 페이스로 달리기를 한 삼십 살의 어느 날, 발목이 나가 한 달 가량을 고생하고선, '이제 나는 더 이상 4분 50초대를 뛰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지루한 달리기를 지금껏 지속해 왔다.



나의 달리기는 열정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저 안하면 허전한 습관 정도였고, 내 바디 컨디션을 측정하는 척도로 쓰이곤 했다.





20대 때 나는 달리기에 미쳐있었다.

스물, 제대로 된 러닝복도 없이 마냥 뛰기만 했다. 짧은 치마를 입고 한여름, 탄천을 뛰었던 기억이 있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미친 짓을 하게 된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마치 매일 세끼 식사를 하듯, 달리기는 맹목적인 행위였다. 달리기 위해 살을 뺐고, 달리기 위해 밥을 챙겨 먹었으며, 달리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다. 무리한 운동으로 발 수술을 하고 난 뒤에는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섭렵해 가며 자체 재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뭐, 달리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여러 운동 종목들을 섭렵하는 동안 달리기는 단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지 못해 속이 끓던 주말에도, 취업 준비를 하며 자신감이 바닥났을 때에도, 친구의 짝사랑을 이어주던 때에도 나는 달리기를 선택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느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고민이 너무 깊을 땐, 내가 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생각에 골몰하게 되니까. 하지만 그런 날은 또 그런대로 '눈 깜짝할 새' 달리기가 끝났다며 즐거워하곤 했다.






20대 때도 나름의 성장통을 겪었지만, 30대의 성장통은 다른 의미로 불쾌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30대 여자]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이제는 꿈꾸기보다 현실에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미 그전에도 [학벌]과 [수저논란] 등, 많은 낙인찍기에 이골이 나있었지만, 내가 정통으로 맞은 건 [30대 여자] 콤플렉스였다.



삼십 넘어 헤어진 남자친구에겐 '너 어디 가서 나만한 남자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아냐'는 얘기를 들었다. 헤어질 때 뭔 소리를 못하겠냐마는, 저 '다시'라는 말이 이번엔 마음에 콕 박히더라.



유학 이슈도 마찬가지 었다. 풀-타임 석사 유학을 알아보는데,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자에게는 유학 비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최선보다는 차선을 택해야 했고, 그마저도 차선책이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그러나, 솔직히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눈앞에서 가능성의 문이라는 게 계속해서 닫히고 있었다. 20대 때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다, 그때 기회가 왔을 때 잡았어야 했다, 스스로의 한심함을 곱씹는 날들이었다.






그게 내가 맞이한 [30]의 첫인상이었다.  

스물 중반에 삼십의 오빠와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늘 모든 대화를 '돈'으로 끝내는 재주가 있었는데, 하루는 '돈을 벌고 싶다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어?' 하고 물으니 고민하는 흉내조차 없이 '네가 어려서 모르는 거야'라더라. 며칠 안 가 그와 헤어졌다.



나는 그 사람과 같아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는 어느새 편리한 핑계가 되어, 매사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현실과 타협할 줄 아는 거라며,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에도 만족하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사실 완전 틀린 소리는 아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건, 그만큼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도 크다는 뜻이니까. 최선이 아닌 차선에도 만족한다면, 이론적으론, 훨씬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데 유리할거다. 



그렇담 나는 좋은 건 갖기도 전에 놓아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아니라해도 이전보다 더 노력할 자신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 마지막 줄이 주구장창 [30대론]을 외치게 된 이유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전보다, 또는 이전만큼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아는 고통을 다시 겪는 게 두려웠고, 이리저리 전전긍긍하며 뛰어다니는 내 모습이 그리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달리기에 대한 열정은 그와 함께 줄었고, 이런저런 바쁜 일정을 핑계로 언젠간 하려 했었던 달리기에 대한 글쓰기나, 마라톤 풀코스 완주하기, 러닝 전용 SNS 개설하기 따위들은 영원히 시도조차 되지 않은 채 투-두 리스트에 남아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생각보다 야박하지만은 않아서, 절박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두려움에 떠는 사람에겐 믿음을 건네주곤 한다. 나이에 집착하며 자신감이 떨어졌던 때 (구)남친은, '당신은 내 꿈의 여자야'라고 과분한 칭찬으로 강박의 늪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결국 유학은 가지 못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전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며칠 전, 한 아주머니께서 달리기 영상을 좀 찍어갈 수 없냐며, 계속 말을 걸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기회가 왔다며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시더라. 러닝 머신에서 뛸 때는 몸이 위로 뜨는데, 보폭을 넓게 하고 뛰기 위해선 어떡해야 하나, 나는 60이 넘었고 전문 달리기 수업까지 등록을 했는데 무릎이 자꾸 아프다, 혹시 노하우가 있냐고.



반짝이는 호기심에 도움이 되는 답을 준비해놓고 싶어 오랜만에 바깥 러닝을 하였는데, 5 10초대의 페이스가 아직 무리 없다는 사실 발견하게 되었다. 2킬로만 더 빼면, 4분대 기록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30대의 규칙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열정을 불태웠던 달리기에서조차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릴 정도로 잘못된 신념을 붙잡고 있었구나 싶어 허탈했다. 이제껏 내가 예상한대로 흘러간 일들이 얼마나 되었던가. 유리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찾아다니면서, 스스로는 한계를 규정짓는 일에 골몰하고 있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던 거다. 



생각해보면 20대 때도 달리기는 어려웠다. 운동이라곤 중학교 체육 시간에 해본 게 마지막이어서 달리는 게 아니고 땅을 파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과거의 달리기가 더 활력있고, 아름다우며 즐거웠다고 회상하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던 걸까?



30's 달리기 기록을 시작한다. 이 기록의 끝에는 또 무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30의 달리기가 20의 달리기처럼 추억하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기를 바라며 첫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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