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를 다닐 시절엔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묻는 질문지가 있었다.
나는 거기다 부모님의 직업을 매번 농부라고 적었지만 사실 나의 아버지 직업은 다양했다.
(물론 엄마의 직업 또한 다양했었다.)
내가 초등학교시절 즈음에 아빠는 장사를 했었는데 시골 오일장에서 옷 파는 일을 하셨다.
멀리 있는 오일장을 떠돌아 다니신게 아니라 동네 오일장이랑 집을 중심으로 한 10리 정도
되는 오일장들을 리어카에 팔 옷들을 싣고 그 리어카를 직접 끌고 오가며 장사를 하셨다.
아빠가 장터에서 장사를 마치고 오실 때 쯤 한번씩 동생이랑 시간에 맞춰서 오일장 가는 길목으로 아빠를 마중 나가곤 했었고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아빠를 만나게 되고 그럼 아빠가 끌고 오던 리어카 뒤에 서서 리어카를 밀면서 집까지 걸어왔었다.
동생이랑 그렇게 아빠 리어카를 밀고 오던 일이 나는 신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마중 나가는 날에는 아빠가 무척 환하게 웃어 주셨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즈음에는 아빠가 건축 공사장에 노동일을 다니셨었다,
새벽에 나가셔서 저녁 늦게 돌아오셨던 기억이다.
한번은 그때가 시험을 치고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던 날이지 싶다.
친구들과 함께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인데 반 쯤 왔을 즈음에 한 버스정류장에서 일복을 입고 버스를 타셨던 아빠를 만났던 적이 있다..
나는 버스 종점에서 탔었기에 자리에 앉아있었고 버스 창문 밖으로 줄서서 동료분과 함께 버스에 올라오는 아빠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근데 아빠는 나를 못 본 모양인지 내 자리까지 오지 않으시고 저만치에 손잡이를 잡고 서서 자리를 잡으셨다.
버스 안이 사람들로 북적였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자리를 뺏기는 상황이라 나는 자리에 앉은 채 아빠를 불렀다.
“아빠!”하고 말이다.
역시 아빠는 내 목소리를 알아채고 나를 쳐다보셨고 나는 아빠를 향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하며 “아빠! 이쪽으로 와요”라고 큰소리로 얘기했고 아빠는 환하게 웃으시면 내 곁으로 걸어오셨다. 나는 아빠께 자리를 양보하고 친구들은 아빠께 인사를 드렸고 그 후로 버스안에서는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피웠던 기억이 있다. 아빠 귀가 먹먹하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아빠는 말씀도 없으시고 표현도 없으신 분이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몇마디 안되는 단답형 대화만 나누고 집까지 왔었다.
이 날도 아빠는 환하게 웃으셨던 것 같다..
이 날은 저녁식사도 가벼운 분위기에서 함께 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시간이 한참 지나 내가 성인이 되고도 한참 뒤에 엄마가 이렇게 얘기 했었다.
딸아!
예전에 그때에
아빠가 너한테
“참 고맙다!” 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빠는 직접 내게 얘기 해 주셨다.
“아빠는 니가 참 고맙다!”
고맙다!
국어 사전 :[형용사]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
엄마언어 사전: 나는 이한마디에 내 삶이 담겼고
너에게는 나의 이 한마디가 살아가는동안
삶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