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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준이 되는 것

방황을 멈추는 방법

by 떰띵두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하고픈 얘기가 있는데 입 밖으로 뱉어 내기가 쉽지 않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곰곰이 정리를 해본다.

그러다 말고 갑자기 인터넷서점을 찾아 들어간다.

왠?

생각다 말고 무슨..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즐겨 찾던 인터넷서점에서 기웃기웃 머뭇머뭇거리고 있다..

기억에 없는 건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도무지 찾기가 쉽지 않다.

책의 제목이 선뜻 떠오르질 않아 헤매고 있다.

내가 지금 하고픈 얘기가 내 생각인지 니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니생각을 내생각인양 얘기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할터인데 싶어 하고픈 얘기를 풀어내기 전에 선명하지 않은 그 책을 한번 훑어보려 하는데 도대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며칠을 더 곰삭혀야겠다.

이게 내 생각이라면 무르익을 테고 이게 니생각이라면 또 한 번의 감탄과 함께 씹어 삼키기부터 해야 할 터이니 곰삭으려면 몇 날 며칠이 더 지나야 할지도 모르는 일.

잠깐 하고픈 말을 담아두어야 한다..

잊지 않으려 짧은 메모로 메모장에 낙서하듯 남겨두려 하니 그것이 바로 제목이 되었다.


시간이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맴맴거리는 책의 제목은 떠오르지 않고 뭔가 표절의 느낌이었던 생각도 이제는 잘 기억에 나질 않는다.

내 기억력의 문제이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결정 내렸다.

떠오르지 않는 것에 목을 매는 것은 너무 소모적인 일이란 걸 알기에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오늘 글문을 열었다.

한 달 전 메모해 둔 글귀를 읽어보고 그날에 내가 무얼 얘기하고팠는지 되짚어본다.

그날엔 뭔가 빼곡한 마음이었는데 오늘은 담백한 기분이다.

흥분하지 않으며 수다를 피울 수 있을꺼라 기대하게 된다.


내 삶의 기준이 되는 것.

사는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주제이다.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목적을 찾아두는 것이 언제나 고민인 나는 언젠가부터 아주 간결한 나만의 기준을 마련해 두게 되었다.

헷갈리고 혼란스럽고 막막하고 흐릿하고 막연하고 두렵고 무섭고 긴장되고 기운 빠질 때..

그런 때에 나는 나의 등대 같은 기준들이 있어 고민의 시간이 간결스러워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여긴다.

누구에게나 나와 같은 기준들이 있을 거란 걸 알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나의 주절거리듯 수다스런 내 생각을 전하고픈 욕심에 풀어내어본다.

언젠가 내 아이가 지금의 내 생각을 읽고 느낀다면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혹여나 고개 숙인 그 순간 힘이 되어지려나 하는 기대로 메모해 두게 된다.

나는 예전 언젠가 학교에서 배웠던 그 기초문장을 고민의 제일 먼저에 두고 생각하려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라는 여섯가지 질문 육하원칙이다.

몇 번의 반복을 통해 깨우친 것이지만 내가 아는 육하원칙에는 순서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안다.

나이에 맞는 혹은 생각의 깊이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육하원칙의 순서는 따로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육하원칙을 만족시켜야 할 필요가 없다는것과 육하원칙중 어느것 하나에만 내 시간의 전체를 맡겨야 할 때도 있다는것을 말이다.

우리는 때론 배운 것에 대해 아는 것에 대해 습관적으로 굴욕적일 만큼 순종적이고 강박적으로 따르려 한다는 걸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내 상황과는 달리 전혀 무관하게 엉뚱한 곳에 힘을 쏟고 에너지를 모으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날 나는 나에게 말했다.

나만의 노하우라고 고집하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인정하고 이용하라'는 것에 생각의 시선이 머물면서 반백이 넘어선 지금의 나에겐 무엇을 이란 것이 내 삶의 문장 제일 먼저에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무엇에 집중하게 되었고 지금 나는 그 무엇에 대한 방향과 목적성을 찾았음에 평온한 행복감을 만끽하게 되었다.

무엇을 찾고 난 후 지금 나는 어떻게에 집중하고 있다.

목적에 맞는 풀어냄에 집중하고 있다.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되면서 순서라는 고정관념에서 일탈하면서 내 일상은 너그럽고 자유로워졌다.


나는 내 아이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할 때엔 나에 집중해 나를 탐구해야 하며 나에 대한 앎이 인지되면 그때엔 무엇에 좀 더 집중하기를 그렇게 방향을 잡고 그것의 목표를 설정하고 집중하다 보면 어떻게라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언제라는 시기적인 풀어냄의 시점을 고민하게 될테고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이것을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한 명분을 담으려하고 결국엔 그 이유를 담아 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아들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배운 그 육하원칙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항상 함께하는 한 가지 원칙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구나.

그것은 행함 이란다.


누가?

내가 하는 것이다.

언제?

내가 지금 행하는 것이다.

어디서?

내가 지금 여기서 행하는 것이다.

무엇을?

내가 지금 여기서 이것을 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내가 지금 여기서 이것을 이렇게 행하는 것이다.

왜?

내가 지금 여기서 이것을 이렇게 행하는 것은 내 삶이기 때문이다.

이것 처럼 삶의 기준이 되는 이것들에게는 언제나 행함의 비밀이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행함이 빠진 이것들은 그냥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것은 너의 시간 순간순간 우선순위를 달리하여 다가옴을 잊지 말기를.

그러함에 우선순위의 순서는 언제나 변할 수 있음도 허용해 주기를.

뿐만아니라 이 우선순위를 달리한 고민은 수없이 반복되어진다는 것과 어느 한 곳에서 생각이 멈추게되면 다시 그 순서를 재정리 해야한다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니가 이렇듯 생각과 행함의 반복을 지속하다 보면 그 반복의 힘이 주는 가치를 알게 될 거란다.

생각하지 않는 반복은 노련함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생각이 함께하는 반복적인 행함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단다.

엄마는 이러한 가치 있는 반복을 위해 너도 삶의 기준을 마련해 두었으면 하고 바란다.

사는 동안 번잡하고 혼란스럽고 버겁고 두렵고 힘들 때 꺼내어 주변을 환기시키고 정리할 기준을 말이다.

이런 기준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지하게 되면 그 이후의 삶은 담백해질 수 있더라. 경쾌해 질 수 있더라.

한번 양껏 살아 볼 자신이 생기더라.

그래서

엄마는 오늘도 잔소리처럼 너에게 말하게 된다.

'너에게 집중하고 니가 있을 곳을 스스로 정하고 니가 있는 그곳에 생각을 집중하고 하고자하는것에 온 마음을 다해 해보아야 한다.' 라고.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한번 흘려 들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엄마와 너의 세상은 분명 다를터이니 말이다.

엄마는 엄마의 세상을 살고 너는 너의 세상을 살기를 바라는 욕심에 주절주절 수다스런 잔소리를 담아 내게 된다.


아들아! 엄마는 너를 참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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