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내 기분이나 감정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예정되었던 날짜에 건강하게 출산을 했다.
그러나 째깍째깍 영락없이 움직이는 시곗바늘처럼 내 기분과 감정은 그렇게 일정한 속도로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기에게 정해진 시간에 젖을 물려야 하고 빵끗빵끗 웃던 아가에게 나 또한 웃고픈데 쉽사리 되질 않았다.
내 몸은 여기 이곳에 있는데 내 마음과 정신은 내 것이 아니고 누구의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이 여기저기 윙윙거리는 파리소리를 내뿜으며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주루룩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심장은 갑자기 쿵쿵쿵거리며 난타질을 하고 있고 온몸의 힘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처 없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고 그럼에도 나는 웃는 모습으로 건강한 출산을 축하받고 있었다.
참 많이도 축하를 받았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아낌없는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무엇이 이리도 허전한 걸까?
그때 나는 무섭기도 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명해 낼 순 없지만 나는 두렵고 무서웠다.
무척이나 우울하고 슬펐다.
그리고 무기력했고 허무했다.
남편에게도 첫째 아이에게는 보여주기 불편하고 힘든 모습이었다.
나 조차도 알지 못하는 그냥 이 이상야릇하고 오묘한 몽롱한 이 기분 때문에 내가 한없이 슬프고 그 슬픔이 무섭다고 얘기하기가 미안했다.
남편은 나를 세심히 살피고 살펴주었음에도 나의 우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난감해하고 있었기에 남편의 세심함에 더 큰 짐을 지우는 것이 나는 그때는 불편한 마음이었다.
무엇이 필요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도 모르는데 그때에 나는 그냥 솜이불이 양동이 물을 양껏 머금은 듯 무겁게 젖어있었고 매일매일이 눅눅하고 꿉꿉한 불편한 기분의 연속이었다.
감당하기 버거웠다.
남편과 큰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통곡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이 감정이 남편과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해 더 울었다.
그래도 이런 시간 속 내게 큰 위안과 위로가 되어 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어느 시간 어느 순간이 나에게 그토록 큰 위로와 위안이었을지 가늠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그 친구의 그 짧았던 순간의 위로가 눈물 나게 고맙다.
아마 그 짧은 위안과 위로가 없었다면 내 일상은 몹시도 황폐해졌을지도 모른다.
건강한 둘째를 느지막한 나이에 낳았음을 축하해 주러 친구들이 산후조리원으로 찾아왔다.
더 이상 나의 산후조리를 도와줄 엄마가 세상에 없었음이다.
저녁나절이었지 싶다.
이 날도 남편과 첫째 아이가 함께 산후조리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들이 찾아왔다.
한동안 시끌벅쩍했다.
다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신생아라 감탄하기 바빴다.
그러는 도중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아기 젖은 물리고 있느냐고
나는 그렇다고 했고 그러자 그 친구는 갑자기 내 젖가슴에 손을 올렸고 가슴이 많이 뭉쳐있네라며 염려를 하더니 잠깐이라도 자기가 마사지를 해줄 테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리에 누워보라는 것이었다.
참 난감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나의 난감함은 뒤로하고 수건을 들고 욕실의 세면대에서 뜨거운 물에 수건을 데운 뒤 침대에 나를 눕히고는 산모복 앞단추를 열더니 오른쪽 가슴 위에 살짝 뜨거운 듯한 수건을 올리고는 돌덩이처럼 땅땅하고 딱딱한 내 젖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아팠다. 많이 아팠다.
그 아픔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는 말했다.
아프더라도 참으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온 힘을 다해 정성 들여 젖가슴을 만져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수건을 데워와 나머지 한쪽 가슴도 열심히 마사지해 주던 중 함께 온 친구들이 이제 가자하며 서둘렀고 그 재촉에 더 마사지 못해주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조리원 문을 나서면서는 남편에게 가슴 마사지 열심히 해주라는 당부와 요령을 꼼꼼히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날 이 친구의 행동을 오지랖이라고 생각할 친구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 날 그 친구의 오지랖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참 고마운 친구!눈물 나게 고마운 친구!
친구였던 그 친구는 그날 내게 찾아온 천사였다.
그날 친구가 내 젖가슴을 어루만져 주던 그때 나는 몇 번이고 울먹이던 설움과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그리움을 삼켰었다.
예전에 첫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던 엄마가 내게 오셨던 듯했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 너의 배려가 나를 살게 했다고 얘기할 만큼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그때 나는
맥없던 나는 그냥 기댈 언덕이 필요했었나 보다.
그때에 그저 한없이 포근하고 끝없이 아늑했던 그 언덕이 되어 주었던 너에게 나는 아마 평생 감사함을곱씹으며 살 거란 걸 너는 아는지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