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을 할 것인가?
해고를 당할 것인가?
사직을 할 것인가?
매일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미 이 상황도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상황이지만 소리로 소리로 전해 듣게 되니 마음이 묘하다.
매년 해마다 있는 일이긴 하지만 올해도 영락없이 경기가 어렵고 회사가 어렵고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신년벽두부터 먹구름이 자욱하게 가라앉아 있다.
2024년을 시작하며 호기롭게 세워둔 계획들을 실행함과 동시에 변경 혹은 수정 삭제하는 일이 생기는가 하여 좀 화나고 억울하고 슬프고 겁이 난다.
명퇴든 해고든 사직이든 지금의 직업을 접게 되면 당장 생활경제가 삐걱거리게 된다.
언제나 도전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이 생활경제인 것이다.
나름 이제야 뭔가를 좀 알찌게 야무지게 단도리를 잘해서 5년쯤 후 늦어도 10년쯤 후에는 자발적 은퇴를 생각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데 뭐가 참 뜻대로 맘대로 계획대로 되질 않는다.
이게 사는 일이란 걸 잘 알지만 또 이렇게 현실이 되어 앞에 떡하니 나설 때면 언제나 막막하긴 매 한 가지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결정하고 매듭을 지으려 말고 모르는 척 무시하고 누군가가 대신 결정하고 정리한 후 나를 직접 불러 이제 그만 나가주십사 하고 얘기할 때까지 버텨볼 것인가
아님 이 눈치스러움이 지겨워 호기롭게 먼저 정리를 해버릴 것인가
호기롭게 정리를 한다면 당장 다음 달부터 내 통장에는 마이너스 행진이 시작될 터인데 그러면 이 호기로움은 분명 짐이 되어 나를 호되게 다 그칠 테고 호기로움의 대가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또 분주히 대체할 만한 뭔가를 찾아야 할 테고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기웃거리게 될 터이지만 사실 지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당당하기만 했던 나의 그 오만한 자신감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마음이 조심스럽다.
고민이 깊어진다.
알고도 버티는 것이 얼마나 치욕스러운지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소리에 소리에 소리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당황하게 하고 자존심 상하게 하며 화나게 하고 열받게 할 분만 아니라 억울하고 답답하게 만드는지를 나는 안다.
그래도 나는 매번 다짐했었다.
그냥 치욕스럽더라도 불안한 이 편안을 적당히 유지하기로 말이다.
그러나 이 다짐이 수차례 반복될수록 다짐의 여력도 떨어지는 모양이다.
다짐하고 버틸 용기가 바닥나는 기분이다.
이 치욕스러움을 덮어낼 용기가 바닥나는 기분이다.
예전 노란 봉투가 돌았던 그때와는 또 다른 치욕과 울분이 나의 낯빛을 붉게 만든다.
부끄럽다. 나는 나에게 부끄럽다.
예전 노란 봉투가 돌았던 그때는 철이 없어서일까 그때는 강심장으로 버텼는데 지금은 여러 번의 노란 봉투를 경험한 경험치에 지레 겁먹은 것일까 자꾸만 심장이 움찔움찔해 온다.
이러다 뭐가 결정이 나기 전에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묘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잠깐 벗어나야겠다.
다행히 점심시간이고 나는 짧은 산책을 할 수 있다.
지금 나의 선택은 밥보단 산책이 먼저다.
그래 찬바람 맞으며 조금 걸어야겠다.
그리고 밥 먹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의 루틴을 정리해 본다.
밥 먹고 양치하고 머리 감고 잠자고 그래도 풀리지 않는 문제라면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그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아주 세세하게 시뮬레이션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나는 선택하게 될 것이다.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나의 주관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의 자발적 선택의 시간 전에 모든 것이 정리정돈되어지길 바래보는 이기적인 마음이 함께하고 있음에 조금 미안하고 슬프다.
오늘은 참 지독하게도 춥네!
많이 먹고 에너지를 비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