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참 따뜻한 어감이다.
뭔지 모를 따스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우리 집.
우리 집은 집 뒤쪽엔 대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고 그 뒤론 밭들이 쭉 놓여져 있고 옆으론 산이 놓여있고 그 산속에는 개간된 논과 친구들과 함께 놀던 물웅덩이의 계곡, 그리고 앞집 오빠랑 동생이랑 갈비 끌러 갔던 놀이터가 있다.
우리 집 앞으론 도랑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산물이 흐르고 우리 집 하수구와도 연결된 도랑이 있다.
일 년 내내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는 도랑이라 땡볕 여름날에도 집 앞 도랑에서는 물비린내조차 나지 않는 맑은 작은 개울이었다.
언젠가는 집 앞 도랑 위쪽에다 동네 어른들이 빨래터를 만들기도 했다.
그곳에서 여름날 밤에는 어린 우리들은 목욕을 하기도 했던 빨래터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집 앞에는 나지막한 들판 같은 언덕이 있다.
우리 집에선 앞뜰이고 앞집은 뒤뜰인 그런 자그마한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의 정확한 소속은 앞집이었지만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앞 뜰을 살펴보는 걸 좋아했다.
마치 내 집의 드넓은 정원을 살피듯 그렇게 그 언덕에 피고 지는 사계절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처음부터 이리 세세히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른들의 노고 덕분에 그 언덕을 둘러싸고 있던 대나무를 자르면서 우리 집은 앞이 훤히 틔였고 그 덕에 앞집 뒤뜰을 살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가 된 것이었다.
우리 집엔 집을 중심으로 뒷마당과 앞마당이 있었고 뒷마당에는 장독대가 앞마당엔 우물과 지금으로 치면 싱크대가 있었고 한편엔 급조해 만들어진 큰 솥을 올릴 수 있는 가마가 있었다.
그리고 앞마당과 집 둘레엔 다섯 그루의 감나무와 한그루의 엉개나무, 두 그루의 두릅나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다섯 그루 감나무 중 집을 드는 대문 격이었던 납작 감나무를 나는 제일 좋아했다.
그것은 홍시도 맛나고 감의 모량이 예쁘고 내 방 창문을 열면 나와 마주 보게 되니 저절로 정이 들어 그렇게 된 것이다.
도감나무 한그루.
납작감나무 한그루.
그냥 감나무 세 그루.
도감나무는 화장실 앞에 있었고 그냥 감나무들은 납작 감나무 좌우 옆에 있어 여름날엔 나무그늘을 만들어 주어 그 밑에 평상을 피고 누워 잠도자고 놀기도 하고 밥도 먹고 별의 별것을 다 했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집은 아주 특별했다.
내 방 창문을 열면 세상과 통할 수 있었다.
세상뿐만 아니라 우주와 통 할 수 있었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에도 창문 열고 있으면 동네 경운기소리 어른들의 수다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고 세상의 봄소식도 내가 제일 먼저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창 앞 감나무에서 겨우내 웅크린 새싹눈이 기지개를 켜는 걸 나는 소리로 들을 수 있을 만큼이었으니 말이다.
새싹이 나고 감꽃이 필 때면 그 모습을 세세히 보지 않았다면 모를 예쁨이 세상 가득 차오른다.
비 오는 날 창문을 열면 물안개가 피는 걸 볼 수 있었고
바람 부는 날 창문을 열면 세상에 떠다니는 맑고 밝은 기운이 내게로 날아들어 왔고,
잠 오지 않던 어느 날 밤 창을 열면 깜깜한 까만 세상에 가득 박힌 별들을 보며 우주를 그리기도 하고,
매미가 목놓아 우는 날 창문을 열면 쨍쨍한 햇볕에 살갗이 따가운 걸 느낄 수 있었고 땅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눈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새벽녘 감나무 감이 떨어지는 소리에 창문을 열면 정갈한 촉촉한 새벽의 감촉을 만끽할 수 있었고
이른 아침 참새소리에 창을 열면 물방울 맺힌 풀잎들을 볼 수 있어 행복했었다.
이렇게 나는 자라나고 있었다.
내 방 창문을 열고 창 앞에 고개를 내밀고 앉아 있노라면 밭일 가는 동네 어른들과 인사 나누게 되고 그 덕에 밭일 마치고 내려가시는 길에 각양각색 밭 먹거리를 주시곤 했었다.
여름날 우물가에 웅크리고 앉아 세숫대야에 머리감을 때에도 밭일 가는 어른들은 안부를 물어오셨다.
마당 평상 위에 누워 하늘 보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을 때에도 밭일가던 어른들은 말을 걸어오셨다.
우물가에 빨래를 할 때도, 집벽에 세워둔 리어카 타이어를 돌리며 놀고 있을 때에도, 하물며 방에 얌전히 있는 날조차 내 방 창문을 톡톡 치고는 밭일하던 어른은 집 우물을 퍼 쓰겠노라 고하기도 하셨다.
어디 이것만 있을까
우리 집 평상은 동네 모두의 쉼터이기도 했다.
힘들어도 한숨 쉬어가고 더워도 한숨 쉬어 가고 무료해도 한숨 쉬어가고 속 시끄러워도 한숨 쉬어가고 생 판 모르는 낯선이 조차 들러 쉬어가던 곳이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은 그야말로 아주 특별했다.
그것은 우리 집엔 울타리가 없었음이다.
울타리가 없던 우리 집 앞마당은 그래서 누구든 들를 수 있는 곳이었고 울타리 없던 우리 집에 살았던 나는 타인의 시선이 그리 거슬리거나 신경 쓰이지 않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쩌면 숨기고픈 일을 내가 하고 있을 터인데 나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것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나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 덕에 나는 어쩌면 나만의 생각길이 열렸고
그 덕에 나는 어쩌면 특별한 선입견도 없고
그 덕에 나는 어쩌면 고정관념으로 힘들지 않아도 되는 유연성과 융통성을 가지게 되고
그 덕에 어쩌면 나는 세심히 보고 세밀히 살피고 세상과 공감하는 나만의 더듬이를 선물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울타리 없던 우리 집은 지금도 울타리 없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끔 우리 집 앞마당이 그립고 내 방 창문 앞이 그리운 날은 지금처럼 우리 집의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지금 우리 집은 감나무도 두릅나무도 없다.
그냥 말알간 집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 말알간 우리 집을 나는 가끔 한 번씩 보러 간다.
울타리 없는 우리 집 평상에 걸터앉아 비춰드는 따사로운 햇볕을 양껏 받고 에너지를 충전하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