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었다.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았고 그즈음에 우리는 만났었다.
우람한 몸집의 그 친구는 다소 여리한 나에겐 부담스러웠지만 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이 여리고 예쁜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 친해졌다.
그 친구는 내 옆자리에 앉아 열심히 호객 행위를 했고
나 역시 그 친구 못지않은 열정으로 아주 열과 성을 다하여 호객행위를 했지만 언제나 나는 그 친구의 열정이 감탄스러울 때가 한두 번 아니었다.
우리는 그때 참 열심히 일했었다.
우리는 그때 어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나와 일을 할 때였고 그 덕에 참 열심히 했었다.
그때 나는 그랬다.
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나 온 이 일터에서의 시간이 절대로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는 그때 어쩌면 인생의 가장 가난한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그 덕에 참 빼곡히 빈틈없이 열심히 살았다.
우리는 서로가 그렇게 열심히인 것을 보고 힘을 얻었고 서로의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하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만나 몇 시간씩 함께 놀곤 했었다.
서로의 피곤이 극치에 달했지만 그 친구는 나를 위해 언제나 먼저 아이들을 챙겨 주었다.
그때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얼마나 큰 보상이었는지 모른다. 그 친구도 나만큼 피곤함이 컸을 텐데 단 한 번도 내겐 불편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는 언제부터인가 나를 몹시도 존중해 주었고 존경스러워했었다. 나를 멘토라고 했었다.
나는 그런 친구가 있어 언제나 든든했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었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 친구는 내 편이었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나는 10여 년을 함께 했다.
그 친구가 있어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같은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호객행위에 열을 올리는 우리는 나름 열정을 불태운 덕에 경제적 보상을 얻었고 점점 나아진 생활에 아이들을 위한 소비에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지만 부자가 되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자가 되고자 사업장을 개설했다.
그 친구가 내 옆에 여전히 함께 해 주었음에 겁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시작은 우리에게 우리의 앞 날을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을 꺼라 호언장담했던 우리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그 덕에 내 인생 최고의 빚도 떠안게 되었었다.
숨이 턱에 차올라 헉헉 거리던 그 어려운 시절에도 그 친구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 함께 해 주었다. 결코 그 친구의 노력에 주어질 보상조차 예측할 수 없는데도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 고마움이 무엇으로도 설명되어질 수 없지만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어려움은 어려움대로 풀어내면서 묵묵히 내 옆에 있어주었다.
그 고마움에 목이 메이고 그 친구의 생활을 보면 애가 타는데도 나는 욕심부려 모른 척 그 친구의 동행을 당연시했었다.
내 인생 가장 이기적이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다시 한번 지나오면서 나는 내 빚 갚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 친구도 몹시 힘들었는데 미처 그 친구의 힘듦을 보살필 만큼 내 여유가 없었다.
그러했기에 그 친구는 아마 내 힘듦의 몇 배는 더 함 들었을 터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던 그 시절 나의 이기로움이 참 부끄럽다.
그 친구와 나는 영원할 듯 그렇게 언제나 함께 했었다.
주변인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이간질도 수없이 많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서로가 그렇게 묵묵히 잘 지켜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힘들었다.
어느 날 한 번씩은 교만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제 벗어 날지 모를 이 힘듬의 시간 속에서 내가 저 친구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들면서 더더욱 그 든든한 친구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졌다.
말로는 단 한 번도 표현하지 않은 부담스러움이었지만 우리의 함께한 시간이 얼마이던가
아마 그 친구는 그런 나의 부담을 읽었을 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자기 일을 해 보겠다며 내 옆자리를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그렇게 터벅터벅 내 옆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송별회도 없었고 독립의 축하파티도 없었다.
이 힘듦의 시간이 조금 나아지면 또 만나리라 생각했음이다.
그 친구는 내게서 독립하던 그날 어떠했을까?
욱하고 화가 치밀고 억울하고 미웠을 텐데 그것보다 제일 먼저에 미안함과 죄송함을 담고 내 곁을 떠났다.
그 친구가 내게서 독립하던 그날 나는 어떠했을까?
그저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었다.
그저 눈물 나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섭고 두려웠다.
어쩌면 그날은 친구의 독립이 아닌 나의 독립이었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더 열심히 죽을힘을 다해 살겠노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이 친구에게 진 이 빚을 꼭 갚겠노라고.
어디서 무엇을 하던 그 친구의 일상에 온기 가득하기를 잊지 않고 매일 기도하겠노라고.
그렇게 친구와 나는 각자 독립을 했다.
그리고 재깍재깍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간은 어느새 4년이 가고 5년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의 소식을 서로에게 물었는지 기억에도 없다.
그저 각자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우리는 소식이 닿을 테고 그날엔 우리 각자가 서로 편안할 것이라 믿는다.
친구야! 우리 조금만 더 열심히 살다 만나자.
그날엔 나도 너에게 그날의 빚을 갚고 싶다.
그날엔 너도 나에게 그날의 빚을 갚길 바란다.
나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해 주고 사랑해 준 내 인생 최고의 친구, 눈물 나게 고마운 친구야!
니가 내 옆에 언제나 함께 하고 있어 내 인생은 참 따뜻하고 내가 꿈꾸는 멋진 인생이란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