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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는 방법

by 떰띵두

한동안 나의 계산법에 오류가 생기는듯하여 몹시도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세상을 구분 짓는 선이 명확해서인지 세상을 보는 눈이 편협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세상을 덜 살았음에 오는 무지함 탓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때 나는 뭐랄까 사는 것의 정리정돈이 잘 되지 않아 힘들어했었다.

어릴 적에는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이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는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다.

자꾸만 빚을 지며 사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 아마 그때가 나의 사춘기였나 싶기도 하다.

나는 죽음에 관한 생각을 골몰히 한 적이 있다.

내 생각의 마무리는 대략 잘 죽고 싶다는 것이었고 죽음 앞에 내 삶이 가볍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시점에선가부터는 빚진 기분의 일상을 그때그때 청산하며 살려고 애쓰게 된듯하다.

그러다 보니 사는 것이 그렇잖아도 녹녹지 않은데 더 힘들어지고 숨 가빠졌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받게 되는 위로와 위안과 도움이 생각처럼 마음처럼 홀가분하게 털어내어지지 않으니 내게는 자꾸 빚으로 쌓여만 가고, 빛더미는 점점 커져만 갈 뿐 줄어들 기미조차 없었다.

그런데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디 한번 맺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평생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 빚청산의 기회란 것이 좀체 뜻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관계가 유지되어지지 않음에 영원히 청산하지 못할 빚으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점점 힘들어지고 점점 무거워지고 점점 능력밖의 것이 되어가니 어느 날엔가는 그냥 손을 놓아버리고 막살아볼까 싶은 유혹을 받게 되고 정신 차리고 살려하니 매일매일이 약에 취한 듯 온정신이 아닌 반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다 하루는 몸에 힘을 빼고 반나절을 자고 일어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난 뒤 가벼운 옷차림으로 동네를 한참 걸었었다.

딱히 뭔가 목적을 가진 것 없이 그냥 걸었다.

그러다 문 뜩 나만의 합리적인 생각이 나를 설득시키고 있었다.


'왜 고집을 부리는가?

받은 것을 꼭 그 자리에 되갚음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고집을 부리면 나도 너도 모두가 힘들어지는 것을.

그래 빚을 꼭 빚진 이에게 갚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 빚은 그냥 대상이 없는 빚인 것이니 그냥 사는 동안 그때에 그 순간에 그 만남에 갚음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해 나와 엇비슷한 생각을 하는 누군가도 만약 내게 빚짊이 있다고 여긴다면 굳이 나에게 빚갚음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로움을 보장하게 되고 그 자유로움 덕분에 자율적으로 자의적으로 내가 세상에 진 빚을 갚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빚갚음의 자유로움으로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는 나의 빚청산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살아갈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거란 막연한 행복감에 나 역시 빚갚음의 일상이 즐거울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사는 동안 빚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압박감은 느끼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맘껏 빚지고 양껏 빚청산을 해가며 에너지 넘치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완전 감탄스러운 발상이었다.

유레카!


갑자기 너무 행복해졌다.

갚아야 할 빚이 많아도 적어도 어떠해도 나는 이제 행복한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많은 빚을 지더라도 그것조차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나의 일상에 목적 없는 빚 갚음이 함께 하는 것은 스스로의 일상이 기특하다는 만족감을 만들어 내게 되고 이것이 바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일상에 깨어있게 된다.

혹 나의 빚 갚음이 되어줄 대상을 찾고자 애쓰게 되고 나의 애씀으로 인해 지금 내 주변에 웃음소리가 잦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혹 사는 것이 무겁고 복잡하고 답답하다면 빚은 져도 좋고 갚아도 좋은 것이란 걸 떠 올려 보기를 바란다.

그러하면 손을 내미는 것도...

그러하면 손을 잡는 것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하루를 만들었고

내 삶의 방향을 찾고 그 방향에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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