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놈의 중독

by 떰띵두

어린 시절 집 안 곳곳에 구수한 콩내음이 베이는 날 이날 은 그야말로 집안 축제의 날이었다.

짙은 노동이 필요한 날이기도 했지만 이 날은 노동의 힘겨움을 한껏 즐기기에 충분한 보상이 함께 하는 날이라 이 날 만큼은 가족들 누구도 별다른 군말 없이 핑계 없이 모두 모여 제각각의 열일을 했었다.

아빠는 마당에 불을 임시 가마를 만들어 지피고 큰 솥을 걸고선 콩을 삶는 일을 하셨고 엄마는 삶을 콩을 씻고 삶아진 콩을 커다란 김장 비닐포대에 콩을 퍼담아 꽁꽁 묶는 일을 하셨다.

아무래도 엄마가 좀 더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셨지 싶다.

김장비닐포대를 묶는 데는 적당한 노하우가 필요했음이다. 비닐포대에 콩을 양껏 담는 것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적은 양을 담으면 할 일이 배로 늘어나고 적당량 담았다 하더라도 적당한 여유를 두고 비닐 포대로 묶어야 했음이다.

이 적당한 공간이 없으면 비닐포대가 터져 애써 삶은 콩들을 잃을 수도 있었고 이 공간이 너무 크면 비닐포대에 너무 많은 양의 콩반죽이 묻어 애써 농사지어 만든 콩을 낭비해야 했음이다.

그러니 별 꺼 아닌듯한 이 비닐포대에 담고 묶는 일이 제일 기술적이고 예민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콩 삶는 일도 충분히 노하우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적당한 물양에 솥뚜껑을 열지 않고 삶아야 콩에 비린내가 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익는 동안의 물과 불조절이 얼마나 중요할까 그것도 장작불일 때는 더더욱 힘들었을 테지만 여기에도 적절히 엄마의 손길이 닿았음에 아빠의 삶는 기술보단 엄마의 담고 묶는 기술에 점수를 좀 더 얹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김장비닐포대가 만들어지면 마룻바닥에 깨끗한 광목천을 깔고 그 위에 삶은 콩을 그득 담은 비닐포대를 놓고 다시 포대위엔 깨끗한 수건을 덮고난뒤 그 위에 올라가 지근지근 발로 밟기 시작한다.

밟는 일이야 밖에서 마냥 뛰놀기 전문인 동생과 내가 제일 잘할 수 있을 듯하지만 그것도 그렇지만은 않다.

무작정 밖에서 뛰어노는 식의 밟기로는 콩을 부수기는커녕 헛수고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비닐포대를 밟는대도 순서가 있었다.

언니, 오빠야가 나름의 무게를 실어 천천히 쿡쿡 밟기를 한 참 하다 보면 콩알들이 이리저리 비켜가는 소리가 잠잠 해지게 된다.

그럴 때쯤이면 동생이랑 내가 그다음을 이어받아 우리는 놀이 삼아 비닐포대 위를 살짜기 쿵쿵 뛰어놀기 시작한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 보면 엄마가 이제 그만하고 얘기하시면 일제히 비닐포대 위에서 내려와 대기한다.

비닐포대 속의 콩들이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되직하게 뭉쳐지는지를 살피고 이제 됐다 싶으면 커다란 대야에다 부스러뜨린 메주콩 반죽 덩어리를 옮겨 담는다. 그렇게를 네다섯 번 하고 나면 메주 밟는 일은 끝이 나지만 비닐포대 속 콩을 밟는 동안 커다란 대야에 옮겨 담겨진 메주콩 반죽으로 아빠와 엄마는 네모진 모양의 메주덩이를 만드신다.

찰지고 예쁘게 그렇게 사각큐브를 만드신다.

이미 한참을 밟아 만들어진 콩반죽이지만 아빠랑 엄마는 연신 대야에 콩반죽덩이를 내리치면서 찰기를 한껏 끌어올리신 후에야 사각덩어리인 메주를 다듬어 만드신다. 만들어진 메주는 마룻바닥에 비닐 포대를 깔아놓고 보기 좋게 쭉 늘어 줄지어 세운다.

메주큐브가 어느 정도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줄지어 바닥에 놓아두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동안 우리는 이날 나름 메주콩을 먹을 수 있다.

솥에서 삶아져 나온 김이 풀풀 나는 뜨거운 메주콩을 밥그릇으로 퍼서는 손바닥에 호로거리며 식혀 한입씩 털어 넣고는 제각각 삶아진 정도를 살피고 의견을 내놓게 되고 비닐 포대에 담을 때 비닐포대 잡아주면서도 한 손으로 메주콩을 한 움큼씩 짚어 입에 털어 넣어 우거적우거적 씹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포대에서 콩반죽덩어리를 끄집어낼 때도 비닐 포대에 붙어 있는 찰진 반죽덩어리의 메주콩을 맛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메주큐브를 만드는 엄마 아빠 옆에 세기고 앉아서 만들어 놓은 메주큐브에서 뾰족이 튀어나온 살아있는 메주콩을 살며시 뽑아 먹고는 손가락으로 토닥토닥 땜질을 했었다.

마룻바닥에 일렬종대로 쭉 늘어선 메주덩이는 아마 수십덩이는 족히 되고도 남았었다.

그렇게 하루일과를 끝내고 나면 그날 이후 나는 몹시도 피곤할 만큼 바빠진다.

매일매일이 아주 예민하고 민첩하며 세밀하게 모든 감각 기관을 열어두며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메주덩이는 마루 바닥에서 한 이삼일 정도 지나면 아빠랑 엄마는 지푸라기로 새끼를 꼬아 만든 새끼줄에 메주 덩이를 끼워 묶고는 빨랫줄에다 집 문기둥에다 새끼줄에 묶은 메주덩이를 널어두게 된다.

그래야 된장이랑 간장을 만들기 좋은 메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이 순간

엄마의 불호령을 피하기 위해서는,

요 며칠을 무탈히 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절체절명의 민첩함과 세밀함이 생명인 것이다.

방에서 부엌을 오가면 살짝살짝.

방에서 밖을 나갈 때도 살짝살짝.

큰방을 들를 때에도 살짝살짝.

마루창을 통해 마당을 살피면서도 살짝살짝.

손가락으로 교묘하게 어슬어지지않은 메주콩을 파먹고 주변 메주반죽을 눌러 원상복구.

... 그렇게 수십 번 수백 번의 살짝살짝을 거쳐서도 엄마 아빠 눈에 띄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차례 살짝살짝을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미 메주콩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할 상태가 된다.

메주콩 파먹는 반복의 시간이 길어진다 싶으면 나는 금단증세를 나타내게 된다.

불안 초조 짜증 뭐 그런 기분에 빠지고 결국 그 불안초조를 잠재우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또 몰래 살짝살짝을 행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 이삼일의 시간 동안 나는 치유불가라는 그 무시무시한 중독을 경험하게 된다.

무사히 엄마아빠의 눈을 피해 그 시간이 지나고 메주덩이가 빨랫줄과 문기둥에 널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중독은 참기 힘든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마룻바닥의 메주덩이보단 새끼줄에 매달려 널려있는 메주덩이에서 중독을 해결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살짝살짝 이 아니라 살알짝살알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 널려있는 메주덩이 앞에 머무르는 시간 길어져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이미 나는 중독되어진 상태라 엄마랑 아빠를 살피기에는 나의 총기가 이미 부족하여 분명 엄마아빠에게 발각되어 크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또 수차례 혼나기를 반복하다 보면 이제 정말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빨랫줄이며 문기둥에 널려진 메주덩이가 말라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면 이제는 이 깊은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몸부림쳐야 한다.

더 이상 공급할 수 없음에 온전히 이제는 생으로 깡으로 이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악을 쓰고 버텨야 한다.

이마빡에 땀이 삐질삐질 날 만큼 동네를 뛰어다녀야 했다.

미친 듯이 열을 올리고 뛰다 보면 한결 버티는 시간이 수월해졌고 그러다 결국 메주덩이들이 새끼줄에서 빠져나와 쌀포대에 넣어져 방안 아랫목으로 자리를 옮기면 그때부터는 잃어버린 정신을 조금씩 찾아오게 된다.

아랫목에선 점점 썩어가는 메주덩이가 지독한 냄새를 내뿜어내기 시작하게 되고 그러면서 나는 제정신이 돌아오게 된다.

결국 나를 중독시켰던 메주콩이 나를 이 지독한 중독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썩은 고약한 냄새로 나를 그 중독에서 멀리하게 도와준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이 지나면 이 지독한 메주덩이도 맛난 된장과 간장으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중독에서 해방된 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 지독하게 힘들었던 그 시간을 잊고 또 메주콩 삶는 날이 돌아오면 그저 마냥 흥분된 얼굴로 솥가마옆에 딱붙어 서서 기다리고 있게 된다.

어서어서 나와라!

빨리 한입 먹어보자꾸나!

아-- 반복이다!


그놈의중독7.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