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브루더-노마드랜드"를 읽고
책의 뒷면 커버에 큰 글씨로 적혀있는 문장은 이 책을 아주 우울한 분위기로 뒤덮고 있었다.
"평생 쉼 없이 노동하는, 그러나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삶에 대하여."
그리고 이어서.
"그럼에도 꿋꿋한 희망을 그리는 이야기"라는 잇따른 문장이 우울한 분위기를 중화시켜보려 했지만, 그저 역부족에 애쓰는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국 천민자본주의에서 낙오된 자들의 고군분투기.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사회가 파괴시킨 특정 계급층의 안타깝고 절박한 일상을 고발하는 저널리즘 정도로 생각했다.
완독한 후의 소회는? 반 정도는 맞았다고 하겠다. 자유시장경제의 가치가 모든 다른 가치들을 초월하고, 어떤 가치들은 함부로 짓밟아 버리기까지 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더욱 미시적인 사례들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견고할 것 같던 중산층이라는 계급의 울타리가 한순간에 무너져 시스템 밖으로 내던져진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안타까웠다.
자산을 가진다는 것이 물론 자산가치 상승의 기회와 하락의 리스크를 동시에 쥐어가는 것이긴 해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부동산 가치 폭락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월스트리트의 악동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동시에 "하긴, 국가가 그러한 파국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었다면 정말 위대한 엘리트 국가지"라는 생각 또한 동시에 들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는 아니었을지.
그래 부동산 폭락은 그렇다 쳐. 그런데 세계 제일의 경제부국의 형편 없는 의료보험체계와 사회보장시스템은 정말 아이러니컬했다. 이건 미국인들의 국민성이 어느정도 묻어나온 정책적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간선제는 복잡하지만, 그래도 그러한 시스템의 구축에 국민들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텐데, 그 긴 역사 동안 방치되어온 사회보장 시스템은 미국인들의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어느정도 근거 있는, 그러나 다소 맹목적인 낙관성에 기인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럼에도 미국인의 개척정신과 낙관주의는 책을 읽는 내내 빛났던 것 같다. 우선 노마드들은 자신들을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라고 정의하며 사회적 시선에 맞섰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러한 낙인을 찍는 야속한 사회를 차라리 떠난 뒤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회사 하나 때려칠 용기가 부족해 달콤한 월급을 울타리 삼아 연명하는 내 모습을 비추어 비교해보니, 그들은 호기로운 자세로 말 위에 올라타 사막을 달리는 개척민 같이 보였다.
물론 그들이 떠난 모험은 타의성이 짙었다. 그렇다고 자의성이 옅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빚 없이 자기 소유의 집에서 가족들과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었다면 RV는 Home이 아닌 Hobby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험은 어딘가 멋진 구석이 있다. 사회의 불합리에 무기력하게 쓰러져 우울해하기 보다는 본인들만의 방법으로 삶을 새로 개척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여기에는 삶의 주체성이 옅보인다. 여기저기 유랑하며 밤하늘을 이불삼고 황야를 마당삼아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은 분명 도시 속 어딘가에 묶인 누군가의 꿈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삶의 낭만이 옅보인다.
물론 노마드생활 나름의 고충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았고 대체로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체로 그들의 삶은 이미 멋진 것이 아닐까.
단순한 지리적 행선지도 삶의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매일을 열심히 움직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