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재의 목적

"폴 오스터 - 뉴욕3부작"을 읽고

by 주희진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집어 침대에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 폴 오스터는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라고 들었기에. 추리소설 경험이 없던 터라, 어릴 때 보던 만화책 명탐정 코난과 같은 흥미진진한 스토리, 플롯으로 내 집중력을 알아서 끄집어내 줄 것으로 예상했고, 평소 보다 약간 수동적인 태도로 독서에 임했다. 겨우 십 수페이지를 읽어나가다 혼자서 결론지었다. 아, 이 책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철학 서적이구나. 그렇게 옷을 챙겨 입고 카페로 나가서 정독을 시작했다.


우선 이 책은 기승전결이랄 것이 딱히 안보인다. 대단한 추리라고 할 것도 없고, 던져진 떡밥이 후반부 회수되며 무릎을 치게 하는 유레카 모먼트도 없다. 처음엔 작중인물들에 대해 나름 상상의 나래도 펼쳐보았지만, 그러한 접근은 쉐도우복싱이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다소 허무한(?) 결말만 쥐어주는 소설이었다. 스틸먼이 왜 지도에 POWER OF BABEL TOWER을 그려넣으며 산책을 했는지, 그리고 그랜드 센트럴에서 나타났던 비교적 말끔해보이던 스틸먼은 대체 누구인지는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이 책은 인물들의 끝없는 정체성 및 목적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철학서적을 쓰는 것이 저자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인물들의 사고의 흐름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묘사는 내내 사르트르의 철학을 떠올리게끔 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나의 세계를 한때 강하게 흔들어놓은 철학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 존재의 목적(본질)이 있는 반면, 인간은 본질에 앞서 그냥 존재한다는 것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인간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은 피투된 존재라고 했다. 세상에 그냥 던져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목적으로 세상에 던져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과거에는 인간존재의 목적이 비교적 뚜렷했다. 신 존재는 의심할 바 없었고, 계급제도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다. 신의 말씀(교리)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이 속한 계급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 그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삶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삶의 종착지를 어디로 설정할지는 물론이고 출발시간, 도착시간, 종착지로 향하는 길, 이동수단, 누구와 동행할지, 혼자 행할지 등 모든 선택이 자유이다. 사르트르는 그래서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어쩌면 인간에게 너무 벅찬 것은 아닐까. 인간은 매 순간 선택하는 존재이다. 나는 오늘만 해도 점심으로 치즈돈까스/오삼불고기 중 고민하다가 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한입 베어무는 순간 후회했다. 오늘따라 니글거렸던 뱃속을 돈까스를 베어 물기 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선택에서도 실패를 하고 후회를 한다. 그런데 거대한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우리 존재의 목적을 어디로 둬야 할지 선택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히 두려운 일이다. 길고 긴 인생의 끝에서 인생을 뒤돌아볼 때 결국 잘못된 종착지로 왔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래서 살아가는 내내 고민을 하다가 답을 찾지 못하고 결국 직업 뒤에 숨는 것 같다. 그 직업이 나의 정체성을 대표해주는 것 처럼, 그리고 그 일이 내 평생의 업인 것 처럼. (나의 작은 의견이다. 덕업일치에 성공한 사람도 많이 보았고, 직업과 별개로 정체성을 잘 찾아가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얘기가 좀 새어나갔지만, 내가 읽은 뉴욕 3부작은 실존주의 - 즉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는 소설 같았다. 1부의 퀸-폴 오스터-스틸먼, 2부의 블루-블랙, 3부의 화자-펜쇼 사이 끊임 없는 상호관찰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정체성 탐구가 있다.


1부의 퀸은 자신의 회색빛 삶을 버리고 폴 오스터라는 역할에 자신의 삶을 통째로 갈아넣었다. 인생이 파괴되는 것 처럼 보였지만, 그가 지루한 삶을 벗어나 치열하게 몰입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생각에 응원하게 되는 아이러니함도 느꼈다. 2부의 블루와 블랙은 서로를 완성시켜 주는 존재였지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여 갑자기 우리네 삶이 이입되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3부의 펜쇼는 너무도 매력적인 연예인처럼 느껴져서, 나도 화자처럼 그 삶을 선망하고 쫓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역시 허무했지만...


최종적으로 책을 덮으며 들었던 생각은... 결국 삶이란게 무엇일까 하는 도돌이표적 질문이었다. 극중 인물들은 내내 아주 치열하게 무언가를 쫓지 않았는가. 표면적으로 봤을 때 다소 허무해보이는 타겟이었지만, 그들은 그 타겟을 쫓는 데 인생을 모두 소비했다. 하지만 절대 그들의 삶을 하대하고 멸시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 목적이 너무나도 중요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내 마음대로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마치 한 인생을 침해하는 월권행위인 것 처럼 느껴졌다.


역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자유를 선고 받았으니까.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다. 그래도 최대량의 고민이 최소량의 후회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오늘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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