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그랬을까?

아들이 아들에게

by 모퉁이 돌

한국기자협회 행사로

서울로 올라오던 길.


코로나 이후

약 3년 만에 아들과 단둘이서 동행했다.


집에서 속옷과 양말,

갈아입을 옷과 배낭을

꼼꼼히 챙겨주고

나도 여행가방을 쌌다.


시골뜨기 아들은

서울 구경에 온종일 들뜬 표정이다.

역시 코로나 이전,

유럽 대도시를 일주하며 한 달을 살고 왔건만

어느새 아들은 서울, 서울 타령이다.


양산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밀양역에 내렸다.


곧바로 코스모스향 기찻길 플랫폼 벤치에

시원하게 드러눕는 자유로운 영혼.

오가는 사람도 많이 없는 터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KTX로 갈아타고

서울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더니

이것저것 묻는다.

서울역에 닿으면

사진을 찍어 달라고도 한다.


우리 세대의 랜드마크

63 빌딩 이야기에는 꽤 관심을 갖는다.


한강이 먹는 물 기준

몇 급수냐고 묻기도 했다.


이윽고 다다른 서울역.


내뱉은 첫마디,

시장하시단다.


역사 위층 식당가로 데리고 갔더니

주문한 음식을 폭풍 흡입하신다.


'식사를 잡쉈고'

서울역 광장으로 이동하자 하셔서

미생 드라마 속 장그래의 회사 빌딩과

남산 타워, 옛 서울역사를 콕 집어

스토리텔링 해드렸다.

신기방기한가보다.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 쪽 숙소로 오던 길.


간식이 필요할 것 같다 하시길래

편의점으로 바로 직행.


또 마구마구 비상식량들을

주워 담는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TV를 트니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을 한다.


아들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먹거리 볼거리 쉴 거리가

넘치고 넘쳤기 때문이었으리라.


문득, 1993년 대전 엑스포 때가

생각났다.


아빠는 깡촌 삼천포에서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그 당시 선진문물이 집약된

한밭까지 올라오셨다.


버스를, 택시를

몇 번이나 갈아탔는지 모르겠다.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

엑스포장 인근 숙소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체험관을 한 곳이라도 더 보려면

차라리 밤샘을 하며 줄을 서야 하기도 했다.


아빠는 행사장 출입구 앞에

간이용 낚시 텐트를 치셨다.


그리고는 나와 여동생을 재우고

당신은 밖에 웅크리고 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밤이슬을 맞으셨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생업 현장에서 깡다구 하나로

밤샘 또 밤샘하시며

고단한 인생을 버텨오신 아빠.


아들이 아들을 보니

이제야 아빠의 말할 수 없는 독백이

나지막이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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