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코로나 확진 후 격리생활을 하며 체력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래도 허약 체질인 것을 감안하면 놀랍지도 않아야 정상이건만, 이번엔 저 깊은 바닥으로 데굴데굴 떨어진 체력이 일상생활 가능 영역의 마지노선에 놓여있는 기분이었다. 방 안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영양제를 주섬주섬 모아 입 안에 털었다. 힘이 나는 듯한 플라시보 효과는 딱 일주일이었다. ‘아, 이건 잘못되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내 몸은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운동해라!’외치며 비실한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운동을 알아봤다. 유년 시절 재밌게 다녔던 검도장을 다닐까. 복싱이나 주짓수처럼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멋진 운동을 해볼까. 나는 기초 운동법도 모르니 역시 PT를 받아야할까. 헬스장은 29년 동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수영은 항상 배우고 싶었으니까 이참에 배워볼까. 역시 나라에서 운영하는 체육관 프로그램이 알차고 싸네.
수 많은 선택지 앞에서 이상하게도 사기가 떨어졌다. 조깅과 걷기를 제외한 모든 운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터라 체육관에 연락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이 마치 한라산을 등반하는 일처럼 어려웠다. 나와 운동의 거리는 인천에 있는 내 방 침대에서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 백록담 만큼이나 멀었다.
지금 상태로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는건 아무래도 쑥스럽고 힘들다. 시작해도 중간에 금방 하산 하겠지. 결국 나는 진입장벽과 포기장벽이 모두 동네 뒷산 수준으로 낮은 홈트레이닝을 선택했다. 종목은 스쿼트와 플랭크. 목표는 코어의 힘 기르기. 스쿼트와 플랭크를 기본으로 하되,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상체운동이나 스트레칭을 곁들여보자. 너무 힘든 날에는 스트레칭만 해도 좋으니 딱 100일 동안만 꾸준히 몸을 움직여보자.
사실 체력이 바닥일 즈음, 내 마음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중이었다. 마지노선 앞에 놓여있는 건 체력만이 아닌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전직을 결심하고 퇴사를 하며 올 한 해는 스스로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다짐했건만 내 시간과 선택을 100퍼센트 책임 져야 하는 느낌은 생각보다 무섭고 두려웠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 나 혼자 멈춰선 기분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퇴사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계획했던 것들의 출발선 앞에서 머뭇거리며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멈춰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나를 스치며 지나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발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에게 내가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내 모습을 그리며 퇴사 했지만 여전히 내 준거집단은 사회가 정해준 모습에 멈춰있었다. 운동 첫 날에 주어진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내려앉은 내 몸처럼 나는 자유와 선택에서 파생되는 불안함과 두려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주저앉아 있었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내 몸의 외침은 ‘내 선택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마주하는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버틸 힘을 길러야 한다.’ 라는 마음의 소리일지도 몰랐다.
오늘은 운동을 시작한 지 14일 째 되는 날이다. 스쿼트 할 때 아팠던 엉덩이와 허벅지의 통증이 사라졌다. 30초, 40초, 50초, 60초, 그리고 30초 두 번. 처음으로 플랭크 동작을 유지하며 주어진 시간을 온전하게 버텼다. 여전히 5분 남짓한 시간동안 몸을 바들바들 떨고 땀을 뚝뚝 흘리며 힘들어하지만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고 있다. 주어진 시간을 인내하는 근육의 감각이 느껴진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 내민 나의 모습은 딱 이정도. 당장 눈에 보이는 근육은 없지만 나만 아는 미세한 변화가 생기는 것. 아직은 힘이 부족해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어도 조금씩 버티는 것.
플랭크를 시작하니 무한하게 느껴지는 시간을 버텨내려 바들바들 떠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괜찮게 느껴진다. 내 시간과 선택의 무한한 자유 앞에서 무서워하고 주저하면서도 외부의 힘이 아닌 온전한 내 두 다리로 한 걸음 떼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실루엣도 나쁘지 않다. 모든 시작의 첫 걸음은 이토록 어설프고 우스꽝스럽고 애잔하다.
플랭크를 시작했다. 여전히 자세는 어정쩡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앞에서 온 몸을 바들바들 떨지만 시나브로 잘 버티고 있다. 조만간 버티는 시간을 늘릴 수도 있을 것 같다.